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회발전에 ‘신뢰(trust)’가 대단히 중요한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 최초의 학자이다. 사실 현대 사회는 ‘사회적 신뢰(social trust)’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화폐’부터 그렇다.
1903년 미국 인류학자 퍼니스 3세는 태평양 남서쪽 캐롤라인 군도의 얍(Yap) 섬을 관찰한 뒤 ‘돌 화폐의 섬’이라는 책을 쓴다. 섬 주민은 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반돼 온 돌을 화폐로 인정하고 교환수단으로 썼다. 얍 섬의 제일 부자는 큰 돌을 운반해오다가 바다에 빠뜨린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섬 주민이 그 돌을 본 적도 없는데도 그는 재산을 인정받았다.
‘경제적 가치’의 근거가 ‘신뢰’에 있는 디지털 코인의 개념은 얍 섬의 돌 화폐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금이나 은처럼 고유의 내재적 가치는 없지만, 모두가 동의하고 신뢰하면 그것이 바로 돈이고 ‘경제적 가치’인 것이다. 불과 22일 만에 LG전자와 현대자동차만큼인 57조 원의 시가가 증발한 디지털 코인 루나와 테라의 경우를 보자.
‘시총 100조 원을 돌파한 코인, 알고 보니 한국산’ ‘한국인이 만든 루나 코인으로 인생이 바뀐 전 세계 루나 백만장자들’ ‘천재들이 선도하는 한국 블록체인, 발목 잡는 (문재인) 정부’ 등등.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국내 주요 언론이 쏟아 낸 기사들이다. 루나 코인을 만든 권도형 대표는 한국의 ‘일론 머스크(테슬라의 창업자)’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사기라고 말한다.
디지털 코인도 주식처럼 거래되기 위해서는 상장 심사를 받는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의 루나 상장 검토 보고서는 겨우 3장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테라의 가격이 하락할 때, 루나를 추가로 발행하여 그 추가 발행한 루나로 테라의 유통량을 흡수시켜 다시 테라의 가격을 올린다”고 쓰고 있다.
내재적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뒷받침하는 대신 디지털 코인을 또 다른 디지털 코인으로 보증한다는 것이다. ‘신뢰’의 보장 장치는 오직 현란한 수식과 말빨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루나와 테라는 자산 담보 없이 알고리즘으로 특정 가치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 상승시키는 진보적이고 혁신적 코인으로 찬양됐다.
어떻게? 첫째 그들은 하버드, 스탠퍼드대학 출신이었다. 둘째 이들 코인으로 떼돈을 버는 가상자산거래소는 레거시 미디어의 광고원이었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이다. 셋째 문재인 정부의 가상자산 정책을 비난하기 좋았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자금을 확보하는 이른바 ICO(암호화폐 공개)를 일반인들의 피해를 우려해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7월 ‘한탕주의, 혹은 더 멍청한 바보를 찾아서’라는 디지털 코인의 위험을 경고하는 칼럼을 썼지만 그때까지 대부분의 전문가와 교수, 언론은 칭송 일변도였다. 지금 그들은 ‘코인 거품’ 운운하며 여전히 ‘전문가’인 양 얘기한다.
한국에서 사업 허가를 받지 못해 철수한 우버는 문재인 정부가 ‘규제혁신’을 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로 인용되곤 했었다. 우버는 자신의 차로 필요한 사람을 목적지까지 태워주고 요금을 받는 서비스이다. 이 아이디어로 우버는 택시 한 대 없이 세계에서 가장 큰 택시회사가 됐다. 고객과 운전기사의 연결은 우버가 만든 사이버 플랫폼에서 인공지능에 의해 이루어진다. 승객 입장에서는 휴대폰 앱으로 손쉽게 차를 부르고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운전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여유시간에 자신의 차를 이용해 추가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인공지능은 대기하지 않고 잘 연결되지 않는 운전기사는 배제한다는 점이다. 수입을 올리려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콜만 기다리고 즉각적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우버는 임시(gig) 노동자를 이용해 돈을 벌면서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은 사회로 떠넘기는 얌체다. 그래서 영국도 그렇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도 우버 기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큰 타격을 받게 된 우버는 2020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캘리포니아 주민을 부추겨 의회가 만든 법안을 무력화하는 법안을 주민투표로 통과시켰다. 한국을 제외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OECD 어떤 나라도 우버를 ‘규제혁신’의 훌륭한 사례로 칭송하는 국가는 없다.
명탐정 셜록 홈즈는 살인사건 현장에서 늘 이렇게 묻는다. “Cui bono(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
니체는 이 격언을 이렇게 표현한다. “모든 진리는 휘어져 있다.” 진리는 직선으로 목표에 이르는 과학적 산물이 아니라 주장하는 사람의 입지와 이익에 오염된 ‘편견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2100년 전 사마천의 말은 더욱 매섭다. “평범한 사람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10배 많으면 헐뜯고, 100배 많으면 두려워하고, 1000배 많으면 그의 심부름을 하고, 1만 배가 많으면 그의 종이 되는데 이것이 세상 만물의 이치다.”(사기 화식열전)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