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은 생명과 부활을 상징한다. 부활의 신인 고대 이집트 오시리스신의 몸이 녹색인 건 그래서다. 서양 중세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몸이 녹색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만물과 인간은 녹색 지향적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그 진화의 근저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녹색을 대표하는 식물은 오히려 녹색을 싫어한다. 햇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생산하지만, 녹색 햇빛은 반사한다. 식물의 몸이 녹색인 까닭이다. 모든 햇빛을 다 받아들인다면 검은색이 되었을 것이다. 녹색을 띠는 이유가 녹색을 기피해서라니, ‘녹색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산다는 게 모순 투성이여서 일까. 인간 세상에도 녹색의 모순이 많다. 한반도 면적의 9.8배에 달하는 그린란드(녹색 땅)가 그 하나다. 대부분 지역이 방하로 덮여 연평균 영하 30도를 기록하는 데다, 일부를 제외하곤 녹색 풀이 나 있는 땅을 볼 수 없다. 바이킹의 그린란드 정착기를 다룬 ‘사가’(saga·북유럽 산문체 이야기)에 따르면, 초기 정착민들이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빙하의 땅에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연중 우리나라 가을 날씨 같은 기후가 이어지는 아이슬란드(얼음 땅)의 정착민들이 이주를 막기 위해 지명을 아이슬란드로 정했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랬던 유럽이 또다시 녹색의 모순을 실토했다. 유럽연합(EU)의회 경제통화상임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상임위원회는 지난 14일 원자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그린 택소노미’(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 분야)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인민당 등 EU의회 5개 교섭단체가 원전 포함 그린 택소노미를 반대하고 있어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에너지 수급체계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월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운영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달아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법안을 채택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도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로 분류한다는 국정과제를 마련한 터라 EU의회 결정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중이 낮아 갈수록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원전이 필요하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원전에 ‘그린’이란 안전 표지를 붙일 수는 없다. 공자 말씀처럼 모든 일에는 실상에 맞는 명칭을 부여해야 한다. 정명(正名)을 통해 명분을 바로 세워야 그린 택소노미의 미래가 가능하다.
이경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