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원(院) 구성을 둘러싸고 한 달 넘게 공백 상태를 지속해온 국회가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상임위원장 선출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조건으로 국회의장단 선출에 협조하겠다”는 국민의힘 제안을 받아들여 원 구성 협상이 타결되면서다. 5선의 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후반기 국회의장에, 부의장에는 4선의 민주당 김영주 의원과 5선의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각각 선출됐다. 하지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 등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더 이상의 정쟁은 안 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유가 등 미증유의 4고 위기 속에 민생은 바람 앞 등불 신세로 전락했다. 당리당략을 떠난 협치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위기 심화는 불가피하다.

작금의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하다.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가 103억 달러(약 13조 원)로,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것이 그 증거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08년(-132억7000만 달러) 이후 14년 만에 연간 무역적자가 재연된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오는 13일 민관 합동 수출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대책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런 처지에 여야가 한 달 이상 국회를 비워두는 ‘직무유기’를 자행했다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국회 법사위원장 선정, 사개특위 구성 등 정치적 이익 다툼이 주요 사유여서 더욱 실망스럽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본연의 임무도 저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승겸 합동참모본부 의장 임명을 재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 전 이들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한 까닭에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됐다. 박 장관의 경우 음주운전, 논문 표절, 조교에 대한 ‘갑질’ 의혹 등 결격 사유가 잇따라 불거졌는데도 국회 공백 탓에 인사청문회를 열어 적격성 여부를 가리지 못한 것이다. 법에 규정된 기본적인 확인 절차조차 지키지 않아서야 어찌 법치를 거론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자라는 국회의원이 이러니 암담하다.

차제에 국회 공백 ‘직무유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필요성이 제기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20대 국회 때 더불어민주당은 여야 합의와 상관 없이 임시회 개회를 강제하고, 의사 일정에 불참하는 의원들에게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는 한편, 정쟁으로 예정된 국회가 열리지 못할 땐 정당보조금을 삭감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18, 19대 국회에서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번번이 회기 종료로 입법이 무산됐다. 현 여야 의원 중 당시 법안 발의에 참여한 이가 적지 않다. 그랬던 사람들이 화급한 민생 현안들을 방치한 채 예사로 국회를 벗어나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길은 ‘무노동 무임금’의 솔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