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트윈스의 간판 타자로 활약했던 박용택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은 선수 시절 유난히 별명이 많았다.
이름 마지막 글자인 ‘택’ 앞에 두 글자를 붙인 ‘○○택’ 같은 일종의 밈이다. ‘용암택’ ‘울보택’ ‘소녀택’ ‘찬물택’ 등.
롯데 자이언츠와 연관된 것도 있는데, 롯데의 홈 구장인 사직야구장에서 펄펄 날아서 ‘사직택’이라는 별명도 있다.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있다. 찬스 때 병살타나 삼진으로 물러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의미의 ‘찬물택’처럼 야구팬의 애증이 서린 별명이다.
압권은 ‘졸렬택’이다. 2009년 시즌 당시 롯데 소속이던 홍성흔과 살얼음판 타격왕 경쟁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LG 구단은 시즌 막판 타율 관리를 위해 박용택을 고의로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방법으로 그를 타격왕 자리에 올렸지만 ‘졸렬택’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돌아왔다.
지난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와 롯데의 경기 때 박용택의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이 진행됐다. 코로나 19 여파로 1년 연기된 이날 행사는 올 시즌 첫 잠실구장 만원 관중 속에서 치러졌다. 박용택에 대한 야구팬의 응원과 배려였다.
이날 모든 LG 선수는 유니폼에 영구 결번이 된 박용택의 등번호 33번을 달고, 그의 다양한 별명을 등 뒤에 새기고 경기에 나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는 박용택 본인이 후배들에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박용택은 “오늘 제일 실망스러운 점은 후배 중에 아무도 ‘졸렬택’을 달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애초 팀 후배인 투수 정우영이 ‘졸렬택’을 달려고 했지만 LG 팬들의 성화에 막판에 ‘흐뭇택’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박용택은 은퇴식을 통해 ‘졸렬택’이라는 흑역사에 대해 팬들에게 ‘위트 있게’ 사과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열린 마인드는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결코 졸렬하지 않았던’ 은퇴식을 더욱 유쾌하고 특별하게 만들었다.
은퇴식과 함께 박용택이 선수 시절 달았던 33번은 41번(김용수), 9번(이병규)에 이어 LG 구단 역사상 3번째 영구 결번이 됐다. 2002년 프로에 데뷔해 2020년 은퇴까지 19시즌 동안 LG에서만 뛴 ‘영원한 LG맨’에 대한 구단과 팬들의 헌사다.
그는 프로 통산 2236경기 출전, 타율 0.308, 안타 2504개, 타점 1192개, 득점 1259개, 도루 313개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프로구단의 영구 결번은 성적만으로는 부여하기 어려운 가치다. 뛰어난 성적은 물론 소속팀에 대한 로열티(충성도)를 갖고 원팀 맨으로 헌신하는 선수에게만 허락되는 최고의 영예다. 오랜 기간 팬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구단의 역사를 온 몸으로 함께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값을 매길 수 없는 훈장과도 같다.
하지만 최근 프로야구는 원팀 맨을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에 직면해 있다.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스토브리그 때 팀을 옮기는 선수가 많아졌다. 합당한 대우를 받고 소속팀에 잔류하는 경우도 있지만, 프로선수에게는 연봉은 곧 자존심이다 보니 보다 조건이 좋은 팀의 유니폼으로 갈아 입는 경우가 많다. 또 우승 반지에 대한 갈망으로 전력이 좋은 팀으로 옮기는 선수도 있다.
프로야구 창단 원년 멤버로 40년 역사를 가진 롯데 구단에는 영구 결번이 단 하나 있다.
11번. 롯데뿐만 아니라 한국프로야구의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는 최동원이 주인공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의 등번호 10번도 최동원의 11번과 함께 사직야구장에 영구적으로 박제될 가능성이 크다.
롯데에서 이대호 이후 영구 결번 선수가 나오려면 팬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롯데 구단에서 이대호의 은퇴식과 영구 결번식에 각별한 의미를 담았으면 한다. 선수 본인은 물론 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도록.
윤정길 라이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