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강원도 인제 소재 ‘DMZ생명평화동산’에서 열린 정전협정 60주년 행사에 참가했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전쟁과 그로 인한 피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년이면 정전협정 70주년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된다는 것이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시점까지 지속된 남북한의 분단과 정전상태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민심을 분열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국전쟁’과 ‘천안함 피격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통상 전쟁에 대한 연구는 재발방지를 위해 개전 원인에 대한 규명이 선행된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에 대한 연구가 많다. 그 결과 남침설 북침설 남침유도설 등으로 설명되기도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전쟁으로 발생한 참혹한 피해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싸움을 중재하려 할 때 누가 먼저 때렸나, 또는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왜 싸웠느냐’고 싸움의 이유를 먼저 묻는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대해서만은 ‘누가먼저 때렸는가’에 집착하는 경향이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전쟁을 얘기할 때, 평화가 아니라 승리를 노래한다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생성된 의식 가운데 우리가 극복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식민지 경험의 소산인 패배주의, 한국전쟁 이후 냉전체제와 한 몸으로 탄생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마초적인 군사문화의 잔재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민주시민의식의 성장으로 거의 극복되었지만, 그 유재는 일부 사람들에게 강고하게 작용하여 합리성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2년여의 코로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우리에게 전쟁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 지구 한편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다.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지만 당사자들, 특히 민간인 입장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이라니! 강 건너 불구경으로 치부할 때가 아니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화력의 집중도와 밀집도가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진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누군가는 현대사회에서 핵무기를 포함한 ‘비대칭 전력의 확산’으로 상호 견제되어, 전쟁 발발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한다. 또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면 상존하는 전쟁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해 온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는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공허하다. 한반도 종전 평화캠페인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이 발생하고, 그 어떠한 협정도 전쟁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고 설파한 클라우제비츠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전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전쟁은 ‘정치용어’로 자국의 의사를 상대국에게 강요하기 위하여, 국가 간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 간에 수행되는 조직적인 투쟁이라는 것이다.
한편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유세 도중 총격으로 사망하고, 이후 여러 가지 형태의 조문과 조의가 잇따르고 있다. 물론 생전에 전쟁불가능국가에서 ‘전쟁가능국가’를 지향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과정에서 발생한 과거사 해결에 대한 입장을 별론으로 한다면, 생명의 존엄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초해서 볼 때 어쩌면 당연하다. 사람세상의 죽음관은 상당히 독특하여, 무한한 관용을 보여주기도 한다. 관용은 인정과 사과와 함께 화해의 전제가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전쟁을 얘기할 때, 평화가 아니라 대다수가 승리를 떠 올렸다. 민주시민의식이 상당히 성장한 지금도 전쟁을 다루는 일부 강연이나, 다큐에서는 여전히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파병 온 군대가 전쟁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로 간주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전쟁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에 대한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 특히 적법절차를 지키지 아니한 전쟁범죄는 국제법상 시효도 없다.
‘좋은 전쟁과 나쁜 평화란 없다’는 경구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 시절도 있었다. 정전협정의 산물인 휴전선은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을 정당화 시킬 수 없다.
이제 전쟁에 대해서는 승리가 아니라, 반드시 반인도적·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밝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드높이고, 더 나아가 평화를 노래해야 한다.
결국 전쟁은 정치적 리더십이 결정하고, 군인이 수행하지만, 피해의 대부분은 고스란히 사병과 민간인의 몫이라는 점을 뼛속까지 새겨,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철규 국립 일제 강제동원역사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