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00% 부산디자이너다. 부산에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현재까지 디자이너로서 약 30년간 디자인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에서 부산을 떠나본 적이 없다.
이제 디자인이 기업의 상품에 심미적 가치나 기능을 증진하는 서비스로만 인식되고 활용되던 시대는 지났다. 모든 생활에 디자인이 존재하지만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디자인은 있는 듯 없는 듯 느껴질 때가 많다. 부산에도 디자인 기업들이 있으며 2012년 사단법인 동남권 디자인산업협회를 창립해 지역의 디자인 발전과 디자인 산업의 육성을 위해 기여해 왔다. 지역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서울과 지역 간 관련 단체와의 네트워크로 디자인 퀄리티를 높이고 있다. 또한 부산의 중소기업과 공공기관, 대학과도 협력 체계를 이뤄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부산시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2021년 ‘디자인산업과 디자인 전문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현재 체계적인 부산디자인산업육성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특히 민선 8기 부산시는 시민행복 15분 도시와 글로벌 허브도시, 창업금융도시, 문화관광도시 등의 정책을 주도하며, 공공·도시디자인과 디자인융합산업 창출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부산디자인 역량을 고도화하고 산업, 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과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부산디자이너로서 부울경 중소기업들과 새로운 사업·서비스 모델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시간은 항상 행복하다. 그런데 7월 초 대구시가 ‘대구·경북 디자인진흥원’을 타 기관의 산하 조직으로 흡수통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산디자이너로서 깊은 우려와 허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부임한 지 며칠 만에 대구 신임 시장과 몇몇 사람의 의사결정으로 15년 이상 지역사회에서 디자인진흥 역할을 수행해온 기관을 없애는 모습을 보며, 지역산업과 사회에 대한 디자인의 역할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디자인이 사회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1979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디자인하라, 아니면 사직하라(Design, or resign)”며 디자인의 중요성과 통찰을 역설한 바 있다. 디자인의 결과는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상품일 경우 새로운 시장을 만들며, 공공디자인의 경우 시민 삶의 질과 발전을 추구한다. 그래서 디자인산업의 대상은 산업과 사회가 되며, 지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분야다. 이런 이유로 2020년 대전시, 2021년 강원도가 디자인진흥원을 개소했고, 충남 등의 지자체들이 지역에 디자인진흥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때문에 디자인을 단순히 기업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거나 디자인기관을 예산 절감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대구시의 의중이 안타까울 뿐이다.
행정안전부는 2014년부터 공공서비스디자인 방법으로 정책모델을 디자인하는 것을 제도화했다. 현재 부산 영도구가 행정안전부의 ‘국민정책디자인’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부산디자인진흥원은 직접 컨설팅을 수행하며 성과 창출에 애쓰고 있다. 필자도 지역주민의 문제를 새로운 지역사회의 가치창출로 전환하는 디자인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부산디자인진흥원은 또한 200억 원이 넘는 예산으로 지역산업과 사회를 위한 진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웃 대구시의 사태를 보며 부산디자이너로서 부산디자인산업의 미래와 비전을 부산시와 부산디자인계가 항상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지원 수단으로 부산디자인이 아니라 부산의 미래 산업창출을 실행하는 분야가 돼야 하며, 부산 시민을 위해 지속적인 디자인 투자를 연계할 수 있는 공공디자인 성과를 창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 부산의 디자인 기업도 스스로 점검하고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부산에 연연하지 말고 디자인의 세계화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디자인 역량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노력과 함께 차세대 부산디자이너를 육성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부산이 발전하고 부산디자인 산업과 부산디자이너가 행복한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