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거지’라는 내기가 있다. 임신한 아내를 둔 이가 지인들을 모아 한턱 낸 뒤 아들을 낳으면 그 비용을 자신이 대고, 딸을 낳으면 지인들이 부담하는 놀이다. 아들 선호 의식이 깃든 풍속인데 지금은 사라졌다. 출생아의 성비 불균형이 극심했던 30년 전만 해도 성행했다. 출생아 통계를 보면, 1990년의 성비는 116명이다. 여아가 100명 태어날 때 남아는 116명 출생했다는 얘기다. 이랬던 출생아 성비가 한 세대가 흐른 2020년에는 104.8명으로 낮아졌다. 정상 수준을 의미하는 자연성비(104~106명)다. 요즘은 이를 넘어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한다. 한국리서치가 최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딸(55%)에 대한 선호도가 아들(31%)을 압도했다. ‘딸바보’ 시대다. 격세지감이 자못 크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아들이 지배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올해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평등지수(0.603)가 전체 146개국 중 98위에 머문 게 이를 상징한다. 남성이 10원의 임금을 받을 때 여성의 급여는 6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제 교육 건강 정치권력 등 모든 분야을 고려한 순위는 99위다. WEF는 한국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얻으려면 132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15일 발생한 인하대 여대생 성폭력 사망 사건에서 보듯, 여성 안전과 인권의 취약성도 심각하다.
이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취임 전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김현숙 장관에게 “여가부 폐지 로드맵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전후 사정에 대한 설명도 없이 김 장관의 보고 내용에 들어있지 않았던 여가부 폐지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고 한다. 지난 5월 24일,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단과의 만찬에서 “(남성 편중 인사와 관련한 참모의 지적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 말은 허언이었던 모양이다. ‘닥치고 폐지’식 일방통행 외에는 달리 해석할 말이 없다.
현재 윤 대통령에게 가장 부족한 건 ‘경청’이다. 민심을 알려면 자신의 ‘주장’보다 남의 얘기를 먼저 들어야 한다. 경청은 포용이다. 그렇게 포용하는 마음은 어머니의 모습, 곧 여성성이다. 천하의 불을 제압하고 가장 낮은 곳까지 흘러가 바다를 이루는 물이 여성성의 대명사다.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자명한 이치다. 민심은 그런 여성성을 간절히 바란다. 여가부 폐지를 고집하는 윤 대통령이 새겨야 할 민심이다.
이경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