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미국에서는 연방 차원에서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해 왔다. 그런데 지난 6월 24일,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이 결정으로 당장 오하이오주에서 성폭행을 당한 10세 피해자가 임신중단 수술을 받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임신중지 금지 법안이 통과되면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의 경우에도 임신중단 금지, 시술자의 의사면허 박탈, 조력자를 신고할 경우 포상금 수여, 심지어 임신중지를 위해 합법인 주로 이동하는 여성까지 체포할 수 있기에 판결의 파장이 심각하다. 이 결정은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이 크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때 주요 참고 자료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2022년 미국 대법원 결정이 임신중단권 관련 논의를 전면 후퇴시킬 수 있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임신중지는 여성의 출산 통제 수단 중 하나였다. 가족 단위에서 가부장적 재산상속 빈곤 질병 등을 이유로 공공연하게 용인되었기에 임신중지가 항상 도덕적 비난이나 금기의 대상은 아니었다. 중세 서양의 종교법과 교회법조차 임신중단 행위를 중대한 죄악으로 여기지 않았다. 낙태죄가 성문화된 것은 19세기 이후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미국에서는 1857년 미국의학협회가 ‘낙태죄위원회’를 설립해 낙태 범죄화 캠페인을 시작한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의사 호라티오 스토어러는 ‘배아의 인격성’을 내세워 임신중단을 죄악시했다. 주목할 점은 오늘날 생명권 진영의 논리가 실은 권력 투쟁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산파나 조산사에 맞서 전문가의 권위를 독점하려 한 의사들이 ‘태아를 살아 있는 존재’로 규정하여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했다.
낙태 범죄화는 임신의 책임을 남성에게는 묻지 않는 심각한 성차별이다. 신학자 코추라니 아브라함은 “낙태 문제 관련 사안을 대하는 태도에서 의아한 것은 이를 주로 여성의 문제로 보고, 가부장적 문화에서 더 큰 책임이 있는 남성을 잊는 경향”이라고 비판한다. 여성의 가치가 사내아이를 낳는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는 낙태를 강제한다. 남성에게 순종하는 게 미덕인 사회, 여성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된 상황, 남성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은 존재할 수 없다. 성폭행을 당한 경우조차 여성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현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여성의 생식능력을 극단적으로 통제하고자 낙태를 범죄화한 역사는 참혹한 비극을 낳았다. 루마니아에서 차우셰스쿠는 1966년부터 1989년 처형되기 전까지 23년간 독재자로 군림하며 ‘인력이 국력’이라는 기치 아래 포고령 770호를 시행했다. 이혼 피임 임신중지가 법으로 금지되면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자궁을 가진 ‘국가 자산’으로 전락했다. 여성이 유산을 하면 경찰이 수술실로 들어와 환자의 다리 사이를 살폈다. 자연유산인지 아닌지 가려내 자연유산이 아닐 경우 의사와 여성을 2년간 감옥에 가두었다.
루마니아의 비극이 미국에서 유사하게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가톨릭과 개신교 복음주의 우파 세력이 고안한 ‘프로라이프’라는 용어는 임신중지 반대가 ‘여성의 재생산 권리 제한’이 아닌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임을 강조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담고 있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정치적 동원력을 앞세워 공화당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낙태 합법 안에 서명했다가 공화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할 때 임신중지 금지를 약속하며 대통령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도 10년간 임신중지를 찬성하다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며 임신중지 처벌로 급선회했다. 미국에서 프로라이프 운동이 종교적 신념이나 생명윤리보다는 미국 보수정치를 지탱하는 정치운동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여성의 건강권과 기본권이 어느 정당 출신 후보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정략적으로 좌우되는 상황은 제2의 루마니아 비극을 예고한다.
2022년 미국 대법원판결로 다시 임신중지는 첨예한 논쟁점이 되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이 질문에 의학계의 답변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해왔다. 6주 10주 24주 28주 어떤 기준이든 임신중지의 쟁점을 생명권 대 선택권의 이분법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여성의 몸 삶 시간을 이분법만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몸, 내 건강, 내 삶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적절한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국가가, 종교가, 정치집단이 임신중단을 처벌하는 것은 여성이 인간이라는 가치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출산을 선택할 능력,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고 공적 생활에 기여할 능력은 인간과 시민으로서 기본 권리로 보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서는 안 된다.
김인선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