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바티칸의 인연은 각별하다. 민주와 평화의 인연이다. 대표적인 조력자가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교황이다. 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목숨을 구했다. DJ가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여 우리 정부로부터 무기징역 감형과 국외추방 조치를 이끌어냈다. 민주주의를 신장하고,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DJ의 치적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4년과 1989년, 그의 2차례 방한은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바티칸과의 좋은 인연을 북한으로 확대할 수는 없을까. 이런 시도를 가장 먼저 한 이는 DJ였다. DJ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교황 초청을 제안해 승낙을 받았지만, 북한과 교황청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그다음 시도자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그는 교황 방북을 2차례 추진했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의를 받은 뒤 다음 달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방북을 요청했다. 이어 2021년 10월 바티칸 방문 때 다시 시도했다. 북한이 초청하면 “갈 수 있다”에서 “기꺼이 가겠다”로 교황의 방북 의지를 높이긴 했으나, 결실을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비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김일성 국방위원장이 교황 초청을 추진한 긍정적 사례도 있다. 그는 초청을 위한 첫 준비작업으로 1988년 가톨릭 신자 2명을 바티칸에 보냈다. 교황의 해외 방문은 신자를 찾는 ‘사목 방문’이 원칙인데, 그에 부합하려면 북한에 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입증이 필요해서다. 아울러 같은 해 평양에 250명 수용 규모의 장충성당을 지었다. 북한에 교황이 방문할 수 있는 요건은 갖춰진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국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초대하면 가겠다. 거절하지 않겠다”고 했다. 교황의 말에서 종전보다 더한 절실함이 느껴진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한반도와 대만 등에서 전쟁 위기가 커지고 있어서다. 그는 “(러시아의) 괴물 같은 모습만 보고 이 전쟁의 배후에서 펼쳐지는 전체 장면을 보지 못하면 위험하다”고 했다.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을 위기의 근본원인으로 보는 시각이다. 김일성 위원장이 그랬듯이, 평화롭게 살기 바라는 마음은 김정은 위원장도 같을 것이다. 특정 강대국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 입장을 취하려는 교황은 유력한 중재자가 될 수 있다. 교황에게 방북 초청장을 보내길 당부한다.
이경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