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나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여름 끝 자락을 막 지나 맞이하는 ‘일찍 온 명절’이다. 또 한 번의 휴가 시즌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대체공휴일을 포함해 4일간 이어지는 이번 추석 연휴에는 차례보다는 홈 파티나 나들이 계획에 관심을 더 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1949년 당일(음력 8월 15일)만 휴일로 지정됐던 추석 공휴일은 1986년 다음 날(음력 8월 16일)까지 2일로 늘었다. 1989년에는 전날(음력 8월 14일)도 휴일로 지정되면서 3일 연휴가 정착됐다. 덧붙여 2013년 대체휴일제도 시행령으로 연휴 3일 중 하루라도 공휴일과 겹치면 연휴 다음 날(음력 8월 17일) 쉬게 됐다. ‘민족 최대의 명절’ 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 이동 상황을 고려한 조처일 수도 있다. 방방곡곡에서 차례를 매개로 가족·친지 간의 만남이 다채롭게 이뤄졌다. 모처럼 어릴 적 친구나 가까웠던 이웃과 정을 나누는 자리도 소중했다. 이렇게 추석 쇠는 일을 빠뜨리면 꼭 풀어야 할 숙제 하나 제때 처리 못한 기분이었다. 연중 거치는 통과의례였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 신생아 출생률은 폭증했다. 한 가정에서 보통 아이 네댓을 뒀다. 산업화와 도시화 바람이 분 뒤 베이비 붐 세대가 사회활동을 본격화했던 1980년대에는 귀성 열차와 고속버스 안은 승객들로 미어터졌다. 승차권 확보 전쟁은 치열했다. 다들 고향을 향한 들뜬 마음으로 불편을 이겨냈다. 자가용 시대가 오면서 고속도로는 몸살을 앓았다. 서울~부산 운행이 10시간 넘는다는 등 명절 고속도로 정체 구간을 실시간 전하는 것이 방송 주요 뉴스였다. 부모들에겐 쏟아지는 귀성 뉴스가 자식들의 고단한 고향길 소식이었다.
자식을 여럿 둔 시대였으니 사고뭉치가 하나쯤은 있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추석 당일에도 나타날 처지가 아닌 ‘못난 자식’이다. 밤 늦은 시간 남 몰래 얼굴만 비치고 발길을 돌렸던 그 자식의 뒷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본 어머니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아픈 추석 풍경 중 하나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지만, 부모에게는 ‘귀한 내 자식’이었다. 자식과 가족친지가 많으면 얽힌 갈등과 사연도 많았고, 적으면 적은 대로 허전했다.
추석은 ‘며느리와 사위’가 기피하거나 두려워하는 날이기도 했다. 차례상 등 음식 장만은 며느리의 고행이었고, 처가 쪽 친인척이 던지는 묘한 시선은 사위의 심적 부담이었다. 모처럼 가족끼리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는 자리가 일부 오지랖 넓은 친인척 탓에 뒤끝이 좋지 않았던 집안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젊은 세대는 “시집 장가 언제 가느냐”, “직장은 어디냐” 등의 말을 되풀이해 듣는 것이 끔찍했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명암이 엇갈린 추석 풍경은 다 사람이 빚어낸 것이다.
요즘 추석 연휴 고속도로 정체 구간 뉴스는 뒷전으로 밀렸다. 20세기 말에는 부모가 자식 집을 찾아 추석을 쇤다는 ‘역귀성’이 화제였다. 이 또한 뉴스거리도 안 된다. 스마트폰을 통한 목소리나 영상 대면으로 추석 인사를 대신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차례를 지내는 집안이 줄어드는 추세인 데다 선물과 용돈을 챙겨줄 사람과 만남이 많지 않아 명절 스트레스는 덜하다는 평이다. 인구 감소 ‘덕분’이다. 사람이 사라지는 시대의 달라진 세태가 당연하게 다가온다.
세계가 ‘아이 안 낳는 대한민국’을 걱정한다. 지난달 영국 BBC 방송은 한국의 여성들이 ‘출산 파업 중’이라는 뉴스를 비중 있게 다룰 정도다. 2020년대 출생한 아이들이 환갑(태어나서 60년 만에 맞는 생일) 전후가 되는 2080년대에는 추석 쇠러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지난해와 같은 합계출산율 0.81명이 지속한다면 2080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94.6%로 치솟는다. 2020년 고령인구 비율(23.4%)보다 4배를 넘는 수치다. 100명 중 5명의 노동인구가 나머지 95명을 책임지는 구조다. 수도권 외 나라 곳곳의 ‘소멸 지역’에서는 사람 구경하기 힘들지 않을까. 명절 때 대규모 인구 이동이 사라지면서 3일 연휴가 불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민정책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펴 성공한다면 여러 나라 핏줄의 다양성이 융합된 축제나 뿌리 찾기 행사가 명절 분위기를 살릴 수도 있겠다.
지금 상황에 충실하면 그만이지 먼 훗날 일까지 미루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때 사람들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니까. 저출산 문제는 현재까지 백약이 무효일 만큼 해결 조짐이 안 보인다. 모일 사람이 없으니 시대 따라 세태를 달리해도 대대로 이어져온 명절 풍속 현장은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성묘도, 차례도, 가족친지 만남도, 명절 스트레스도 다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는 추석 풍경이 인터넷 포털 지식창고에 갇힐 게 뻔하다. 그런 세상이 점점 다가오는 느낌이다.
강춘진 수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