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극단적 기후 재난을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시련이 한꺼번에 닥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인간의 고통을 기록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에게 눈물과 슬픔을 가져다준 시련을 들려준다.
태초에 인간을 빚을 때 프로메테우스가 도둑질한 천상의 불을 벌거숭이 인간에게 주었던 것이 그 원인이었다. 여러 동물들을 만들면서 각각에게 그 장점과 특기를 하나씩 나누어주는데, 마지막 차례였던 인간에게 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아 결국 신성한 불을 훔친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을 미워하기 시작한 제우스는 불의 대가로 인간에게 끊임없이 재앙을 마련했다. 인간이 반복해서 당해야 했던 불의 대가 속에서 사람들은 “세상에 희망은 없다”, “정의의 여신마저 세상을 버렸다”, 그렇게 말하게 되었다.
우선, 제우스는 인간이 먹고 입을 모든 것을 땅속에 깊이 숨겨놓았다. 인간은 피땀 흘리며 땅을 파고 일구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인간을 괴롭히고도 만족할 수 없었던 제우스는 판도라의 항아리로 알려진 함정을 판다. 판도라는 경솔하게도 항아리를 열었다. 항아리가 열리자 그 안에 있던 온갖 재앙과 질병, 노고와 기근 등 인간들에게 큰 근심을 주는 것들이 밖으로 나와 세상에 퍼졌다. 그리하여 육지와 바다에 재앙이 가득 차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간들에게 질병이 찾아왔다. 기겁한 판도라가 항아리를 닫자 미처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희망만이 항아리에 그대로 남았다. 그래서 세상에 희망은 없다.
제우스가 놓은 다른 함정은 전쟁이었다. 인간들이 서로 싸워 죽도록 해서 이 땅에서 인간을 없앤다는 음모였다. 트로이아 전쟁이 바로 그 전쟁인데,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쳐진 황금 사과는 여신들의 불화를 유발했다.
서로 사과의 주인이라고 우기던 여신들은 주인을 가려줄 심판인을 찾아갔고 헬레네를 약속한 아프로디테가 사과를 차지했다. 헬레네의 납치는 이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참전하는 전쟁을 불러왔다. 트로이아 들판에서 인간들은 둘로 나뉘어 서로를 패망시키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이어갔다. 이렇게 해서 영웅들의 시대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정의의 여신마저 세상을 버렸다. 그래서 이 땅에서 정의는 사라졌다.
불의하고 무도한 인간 세상을 없애지 않을 수 없었다. 제우스는 대홍수를 시도한다. 그는 북풍과 남풍을 불러 모았고 먹구름을 만들었고, 하늘에 가득한 구름을 쥐어짜서 폭우가 쏟아지게 했다. 게다가 바다의 신을 부추겨 바다며 강들이 모두 육지를 향해 쏟아지도록 만들었다. 강물이 곡식들과 과수원들, 가축 떼와 사람들, 집들과 신전들을 삼켜버렸다. 온 세상은 대지가 없는 바다가 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남녀가 각각 하나씩 살아남아 높은 산꼭대기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이들이 등 뒤로 던진 돌덩이에서 하나씩 사람들이 태어났다. 돌에서 태어난 인간은 고통을 잘도 견뎌낸다.
대화재도 있었다. 인간 세상이 전부 불로 소멸한 사건이다. 태양의 마차가 지구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는데, 이때 대도시들이 모두 파괴되었고, 그곳에 살던 민족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으며, 산과 숲은 남김없이 불탔다. 그 많던 강들은 말라붙었고, 산 위에 쌓였던 눈은 녹아 없어졌으며, 공기는 용광로처럼 뜨거워졌다. 열기로 습기를 잃은 대지는 사막이 되었고, 호수와 샘물은 증발하여 사라져버렸다. 뭍에 살던 생명들은 물론이고 물에 살던 물고기들이며 돌고래들이며 물개들도 배를 보이고 누워버렸다.
그런데 이 사건은 무능과 무자격이 부른 참사였다. 아폴로는 태양의 마차를 하루만 몰아보겠다는 아들 파에톤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제우스에게조차 허락되지 않는 자리를 인간에게, 그것도 어린아이에게 내주었다. 태양의 마차는 위험하다. 하늘에 오르면 제우스도 두려움에 떤다. 하늘에는 수많은 괴수들, 전갈 사자 황소 사냥개 곰 등이 마차를 위협한다. 아버지의 이런 걱정들은 아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의기양양 마차에 오른 파에톤은 고삐를 잡고 말들을 출발시켰다.
그런데 말들이 어제와 다른 마부를 알아보았다. 고삐로 전달되는 손아귀의 힘이 어제와 달랐던 것이다. 그때부터 말들은 ‘힘없는 손 manus sine pondere’을 뿌리치고 제멋대로 달리기 시작했고, 힘없는 손은 말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거친 말들의 질주를 파에톤은 장악할 수 없었다. 하늘이 아니라 땅에 놓인 길을 따라 달리는가 하면, 지구를 멀리 벗어나 버리기도 했다. 소년은 당황하여 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어디로 길을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세상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무능한 집권자도 제우스의 함정이 아닌가?
김진식 로마문학 박사·정암학당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