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 중에 예술만큼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없음에 많은 예술 지망생들이 절망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그래서인지 예술가 집안에서 좋은 예술가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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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연의 ‘양귀비꽃’.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중국의 명문장 ‘당송팔대가’ 중에도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세 사람은 한 집안 삼부자이다. 소식이 바로 소동파(蘇東坡)라 불리는 그 유명한 문장가이다. 그가 왕유(王維)의 그림과 시를 평하여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 한 평은 조선시대 문인화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 강세황 김홍도 김정희 등 남종문인화의 중심을 이루는 화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동파를 숭배할 정도였다.
조선시대에도 대를 이어 예술적 재능을 보인 집안이 많다. 그중에서도 조선 후기 사족 문인으로 유명한 신위(申緯)와 두 아들 신명준(申命準) 신명연(申命衍)은 모두 시·서·화에 능해 일세를 풍미했다. 이들의 재능은 마치 중국의 소동파 삼부자를 보는 듯하다. 신위는 중국 사행을 다녀온 이후 중국 서화풍의 영향을 받아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시·서·화 삼절(三絶)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 맑은 화풍의 산수화를 잘 그렸으며, 동기창체(董其昌體)를 자기화 한 글씨는 ‘자하체(紫霞體)’라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맏아들 신명준은 아버지의 서화풍을 그대로 이어받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서화에 관한 예술적 재능은 둘째 아들인 신명연(1808~1886)이 가장 뛰어났다. 처음에는 형과 함께 아버지에게서 서화를 배워 남종문인화풍의 모습을 보였다. 신위가 중국을 다녀오며 교류한 중국 화가들의 작품이나 틈틈이 수집한 중국 서화를 통해 청대(淸代) 화풍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에 부친의 영향에서 벗어나 친척 관계였던 사대부 화가 윤정(尹程) 이건필(李健弼) 등과 교류하며 새로운 서화 양식을 습득한다. ‘개자원화보’ 등 당시에 중국에서 수입된 여러 화보의 그림을 보며 공부한 듯하다. 그중에서도 꽃 그림 분야에서 감각적이며 산뜻한 채색과 참신한 묘사로 일세를 풍미했다.
이 작품은 신명연의 장기인 꽃 그림으로 ‘양귀비꽃’을 그린 것이다. 고운 천에 먹과 채색을 사용하여 단정하면서도 정교하게 그렸다. 조선조 전체를 통틀어도 이렇게 아름답고 감각적인 꽃 그림은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꽃 이름 자체가 중국의 경국지색인 양귀비(楊貴妃)에서 유래했으니 오죽 아름답게 그렸을까? 한때 이러한 그림은 담담한 느낌의 문인화와 달리 화려하고 경박하다 하여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정신성을 담지 못하고 꼼꼼하게만 그리는 공필화(工筆畵)로 취급하여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식적인 소재나 화려한 색감을 중시하는 현대미술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장점이 많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조선시대 서화 중에서 이런 단정한 꽃 그림은 새로이 평가해야 할 중요한 미술 갈래라 할 만하다.
황정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