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영국·미국·캐나다 순방길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미국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20일 유엔총회에서 첫 기조연설을 한다. 다음 날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양자 회담을 갖는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도 23일 예정돼 있다. 경제 안보 과거사 등 삐끗하면 국익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 사안을 논의하는 만남이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지 윤 대통령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섰다.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는 전기차·반도체·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 외국산 상품에 대한 미국의 차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거액의 보조금을 주는 ‘칩과 과학법’, 생명공학 연구·개발 분야의 정부 투자를 늘리는 ‘생명공학·바이오 행정명령’을 잇따라 시행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전기차·반도체·바이오 상품의 미국 내 경쟁력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산 전기차의 경우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 혜택이 사라진다. 안보동맹을 경제·기술동맹으로 격상한다는 지난 6월의 한미정상 합의와 양국 자유무역협정은 속빈 강정일 뿐이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시정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이런 불평등 관계가 지속되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암담해지고, 양국의 신뢰와 우의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강제징용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 강제징용의 경우 한국 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렸음에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며 우리 정부에 책임을 계속 미루는 상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해 한일 관계를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입장은 옳다. 오부치 전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한국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데 대해 사죄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아들인 이 선언이 양국 관계 개선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일본 정부가 우리 법원의 판결을 거부하는데도 섣불리 관계 개선 의지를 표출하다간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겨 끌려다닐 가능성이 높다.
북핵 문제 해결은 비핵화할 경우 대대적인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담대한 구상’ 제시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이 “담대한 망상”이라며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한데서도 그 한계를 본다. 바이든 정부 역시 북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한다는 원칙만 표명한 채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경제 제재를 가하며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나 다름없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담대한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담대한 방법’을 논의함으로써 비핵화 비전을 실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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