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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스토킹의 또 다른 이름 ‘강간’

폭력·살인 부르는 스토킹, 사법기관 강력 대응 필요

일상에 만연한 젠더 폭력, 사회 변화도 적극 이뤄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2-09-21 20:00:14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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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범죄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다. 스토킹 행위의 공통적 특성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반복적’, ‘괴롭힘’이다.

피해자에게 신체적으로 접근하여 위협을 가하는 전통적 유형의 스토킹 행위뿐만 아니라 최근 온라인 공간의 사이버 스토킹 범죄 또한 심각하다. 휴대전화나 SNS 메시지, 온라인 게임 채팅까지 동원하고, 피해자 전화번호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해 괴롭히는 등 범죄 유형이 시간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 국회에 처음 발의되었으나 무려 22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적 애정표현이나 구애와 구분하기 어려워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2021년 10월 21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국민의 여론에 떠밀려 서둘러 시행되었지만, 지난해 경찰이 접수한 스토킹 범죄 신고(4515건) 중 처벌에 이른 것은 10%에 불과했다.

스토킹 행위는 살인과 폭력으로 발전할 강력한 위험 요인을 내재한다. 미국에서 실시한 강력범죄에 대한 ‘추가적 피해자 조사’에 따르면 스토킹과 함께 신체적 혹은 성적인 폭력을 당한 사례가 21%에 달했다. 한국에서도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스토킹 행위로 유죄가 선고된 판결 267개의 분석 결과 절반 이상이 강간이나 상해 폭행 협박 주거침입 업무방해 등 다양한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 범죄의 특징을 보였다. 특히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의 30~40%에서 스토킹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는 스토킹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사법기관의 초기 대응부터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 노력이 절실하다. 한국보다 20여 년 먼저 스토킹처벌법을 도입한 영국의 경우 피해자를 위한 임시 보호명령을 위반하면 최대 징역 5년에 처한다. 하지만 신당역 전주환 사건처럼 피해자 보호조치를 어긴 가해자들 다수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작가 린덴 그로스에 따르면 스토커는 ‘소유’ 아니면 ‘파괴’라는 극단적 감정 사이를 오가는 정체성 부재자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상대방을 괴롭히고 굴복시키는 데 있기 때문에 상대의 거부 의사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신과 표적을 모두 파괴하는 극단적 행동을 보인다. 스토킹은 기나긴 세월에 걸친 ‘강간’에 다름없다고 작가는 힘주어 강조한다.

그렇다면 스토킹 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이 여성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로스는 여성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의 젠더 인식 탓이라 설명한다. 여성은 부드럽고 상냥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미소나 의상으로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는 인식은 잠재적 스토커들에게 끈질기게 접근하면 구애를 받아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신당역 살인을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으로 본 서울시의원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처럼 스토킹은 남녀관계에서 용인 가능한 행위로 치부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상대가 거절해도 연락하고, 집 앞에 찾아가고, 협박하는 일방적인 집착과 폭력이 순애보나 짝사랑으로 포장된다. 언론의 보도 행태는 어떠한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 제목과 내용부터 ‘원한’, ‘보복살해’와 같은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해 사건의 책임을 오히려 피해자에게 전가한다. 스토킹을 젠더 폭력으로 호도하지 말라던 여성가족부 장관은 서둘러 대책으로 ‘피해자 상담’을 내놓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토킹 범죄의 위험과 본질을 흐리는 국가 권력의 참담한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가해자의 책임을 경감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범죄는 “성폭행이나 가정폭력 같은 오직 젠더 관련 범죄뿐”이라는 변호사 조디 래피얼의 일갈을 곱씹어야 한다.

여성을 향한 잔혹한 범죄는 한 명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와 이를 알고도 하찮게 여기는 권력의 방조, 태만 속에서 확산된다. 혹자는 강간이 어떻게 문화일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작가 레베카 솔닛에 따르면 ‘강간 문화’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혐오적 표현, 성폭력의 미화가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고 수용자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 즉 물리적 행위만이 아니라 강간이 만연한 환경 전체를 의미한다. 스토킹이 범죄가 아니라 ‘로맨스’ 혹은 ‘미숙한 표현 방식’으로 미화되는 점이 바로 이런 문화의 방증이다. 스토킹을 여성 개인이 조심해야 할 문제, 나쁜 남자 한 명의 문제로 결코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를 직시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안전은 요원하다. 오직 죽음만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인선 부산대 교수·여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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