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2부산청년주간의 슬로건은 ‘청년과 로컬’이었다. 언뜻 유사성이 없는 듯한 두 단어. 생경한 단어의 연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의 공통점으로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를 뜨겁게 관통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문화산업계에선 ‘청년’을 MZ세대라고 명명하며 소비시장의 새로운 경향성을 찾고, 정책적으론 ‘청년’을 중심으로 한 기본법도 제정되었다. 그리고 지방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 ‘로컬’이 등장하자 늘 수도권에 비해 인프라와 자원이 부족하다고 말하던 지방이 새로운 가능성과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기회의 땅으로 탈바꿈되기도 했다.
‘청년과 로컬’이란 두 단어가 등장하며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목표와 창의력을 지닌 채 험난한 지역으로 향했다. 마치 미국 서부 시대의 카우보이들이 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하듯, 후추와 금을 찾아 깊은 바다를 건너 신대륙을 발견하려던 개척자처럼 청년들은 로컬로 떠나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 냈다. 많은 미디어에서 지역으로 내려가 성공을 이뤄낸 청년의 걸음을 조명하고 그들이 개간한 황무지를 ‘로컬’이라 칭한다.
부산에 삶터를 꾸린 청년으로서 또 이번 청년주간에 참여했던 시민으로서 ‘청년과 로컬’이라는 두 단어를 바라보며 조금 다른 시선을 꺼내고 싶었다. 우리가 개척자의 신화에 주목할 때, 원주민의 삶은 언제나 쉽게 대상화되기 때문이다. 먼저 ‘청년이 바라보는 로컬’이다. 청년의 기준에서 로컬을 고민한다면 그가 어디에 올라서서 바라보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광역 단위인 서울에서 부산은 로컬이지만, 기차가 다니지 않는 작은 소도시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다르다.
이번 부산청년주간 주제 발제에서 일본의 인구 상황을 전한 규슈산업대학의 류영진 교수는 대도시일수록 여성의 전입 비율이 높다는 ‘전입 초과’ 현상을 전했다. 오롯이 여성에게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양육의 책임이 전가된 사회 안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서비스직’이고, 제한된 직업군 내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은 대도시뿐이라는 것이다.
일본 도쿄로 여성인구가 집중되는 것처럼 실제로 부울경 전입인구의 남녀차이를 살펴보면 울산광역시는 전입인구 중 남성이 약 9000명, 경상남도는 1만8000명 정도 남성이 더 많지만, 부산광역시만 여성의 전입인구 수가 2300명 정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부산 울산 경남 권역에서 상대적으로 문화인프라와 공공교통망을 갖추고 있는 부산은 그나마 다른 삶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다양성의 도시, 그나마 더 높은 확률로 내 삶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누군가에겐 여전히 대도시’인 것이다. 이처럼 로컬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결괏값이 달리 보이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럼 ‘로컬이 바라보는 청년’에는 어떤 모습들이 있을까. 우리가 수도권을 바라보며 부족함을 말하고 개척자들이 새롭게 바꾸어갈 미래의 도시를 꿈꾸는 사이, 실제 부산으로 유입되어 노동 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이곳에서 삶을 꾸리고 있는 다양한 시민의 문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청년인구가 빠져나가고 소멸 위기가 높은 지역 안에서도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시도를 이어가는 청년들이 있다.
빈터를 찾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새로운 장소로 만드는 청년들, 부족한 제조업 일자리만이 아닌 일 경험의 다양성 자체를 고민하거나,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시장의 착취구조를 고발하고, 다문화 이웃의 인권과 민주성을 지켜내며, 취업시장에서 이탈한 NEET 청년을 사회 안으로 초대하고 적극적으로 껴안아 가는 청년들이 로컬 안에 있다.
부산이 로컬인지 아닌지는 사실 내게 중요하지 않다. 로컬이라는 필터 위에서 새로운 사례에 주목하고 변화를 환영할 때, 꾸준히 이어오던 시민의 움직임이 멈추고 변화가 머뭇거리게 되는 상황이 내겐 더 중요한 문제다. 로컬은 수만 개의 문제가 담긴 공동의 삶터다. ‘청년과 로컬’이라는 단어 위에서 새로운 변화와 함께 오래된 시도들도 촉진될 수 있길 바란다. 지역에서의 삶은 단일하지 않고, 여전히 이곳엔 당장 해결할 일과 지켜야 할 이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