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조선기자재 기업은 국내 대형조선소의 수요를 기반으로 오래 공급망을 유지해오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국내 조선산업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다. 국내 조선소의 선박 수주가 기자재기업 매출 증대에 직결되는, 확실한 수요로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장점인 반면 국내 조선소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동력을 갖기에는 한계이다. 우리나라 조선기자재 업계에서 중소·영세기업 비중이 96%로 타 산업 대비 높은 것은 이를 방증한다.
유럽과 일본은 조선산업이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해양기자재산업을 독자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켜 아직도 전 세계 조선시장을 지배 중이다. 기자재산업 그 자체를 기능적으로 추진시스템부터 재료, 설계디자인 등을 포함하는 19개의 중분류로 나눠 조선산업과는 완전히 구분된 생태계를 가지고, 그에 맞는 정책을 오래 지속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다. 즉, 조선해양기자재 산업계 내에서 중견기업 중심으로 기술적 클러스터화를 이뤄 시스템적 제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독특한 형태의 조선기자재 산업생태계가 구축됐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조선해양기자재산업은 중소기업 위주의 내수시장을 위한 단위제품 생산 및 공급체제로 유럽과 경쟁할 수 있는 중대형 기자재기업 위주의 클러스터화가 미흡한 실정이다.
글로벌 조선해양기자재산업은 친환경·자율운항 기술 중심으로 시장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하나의 시스템 단위 공급을 요구한다. 유럽의 대표 시스템기업인 롤스로이스 콩스버그 등 대형 조선기자재 기업은 낱개 부품기업과 협력해 기능적으로 모듈화된 제품을 판매한다. 우리나라 조선기자재산업은 이들처럼 밸류체인의 중심에서 중소기업을 끌어줄 중대형기업이 많은 부품업계가 민간 주도적으로 기능적 클러스터를 이뤄 글로벌 경쟁력을 갖도록 자발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정부 정책 또한 조선해양기자재의 산업생태계 구조를 변화시켜 나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의 발전된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디지털 전환이 조선해양기자재 산업계에서 더 절실하고 시급하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생산효율 개선, 새로운 서비스의 제공을 통해 제품경쟁력을 강화하면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조선해양기자재 산업계는 독자적인 설계 및 엔지니어링 능력을 갖고자 더 노력하고, 지원기관은 육해상 실증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조선해양기자재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나간다면 충분히 선진 조선해양기자재 국가를 추월해 초격차 경쟁력으로 추후 100년 이상 글로벌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조선해양기자재산업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분야별 시스템 설계가 가능하게 하는 엔지니어링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젊은 엔지니어들의 지속 수혈로 해결해야 한다. 이들이 지금까지 축적된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K-조선기자재’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 국내시장 중심에서 해외시장으로 시장을 넓혀 나가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수출대상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지역, 러시아 및 동남아 등 조선산업이 성장하지 못한 국가이므로 제품 공급과 함께 기본적인 조선기자재 생산기술을 전수함으로써 해외 신시장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조선기자재 업계가 해야 할 일은 기술 수준은 높이고, 우리 제품에 대한 문턱은 낮춤으로써 조선해양기자재 기업이 다양한 해외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독자적인 K-조선기자재 산업생태계를 조성, 조선 1위국에 걸맞은 글로벌 최강의 조선해양기자재 산업국가로 안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조선기자재산업도 유럽처럼 조선산업과 분리해 독자적 기능 수행이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 조선기자재에 특화된 클러스터 육성, 디지털 전환 및 엔지니어링 기술개발 지원, 글로벌 해외 신시장 진출 지원정책을 수립, 뒷받침함으로써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초격차 K-조선기자재산업 생태계를 속히 구축해야 한다.
배정철 한국조선해양기자재 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