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한반도 삼신산으로 꼽히며 숭상받았다. 그런 만큼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앞다퉈 찾던 인기 있는 산이었다. 옛적 교통의 불편으로 일부러 찾아가기는 어려워 귀양 갔다가 풀려난 이들이나 어렵게 올랐던 한라산과 달리 지리산을 올라 기록을 남긴 이가 여럿이다. 함양군수로 있던 점필재 김종직이 1472년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닷새에 걸쳐 유호인 조위 임대동 한인효 등 제자들과 함께 천왕봉을 비롯해 지리산을 유람한 뒤 남긴 유두류록을 필두로 남효온이 지리산일과, 김일손이 속두류록, 조식이 유두류록을 남겼다. 당대에는 금강산과 더불어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산이 지리산이었다.
지리산의 인기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해방 직후 산악인들이 가장 먼저 찾은 산 가운데 하나가 지리산이었고 6·25전쟁이 끝난 직후의 혼란기에도 ‘영산’ 지리산을 찾는 발길은 그 어느 산보다 빨랐다.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인 1947년에는 노고단에서 첫 스키대회를 연 산악인들이 천왕봉까지 적설기 종주 등반을 해내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고 산행 트렌드도 바뀌었지만 지리산을 찾는 발걸음은 여전하다.
그 때문에 지리산은 그에 기대려는 인간의 손길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지리산에 기댄 경남과 전남·북 3개 도의 지자체가 저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숱한 개발 계획을 진행했고 때로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새 정부 들어서 몇 달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미루고 거부되던 산악 관광을 위한 개발 사업이 하나둘 다시 고개를 내민다. 그 대표적인 게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다. 전북 남원시가 추진하는 산악열차는 불과 1년여 전 경남 하동군이 추진하다가 좌초한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의 산악열차 사업과 판박이다. 또 대구 팔공산과 강원 설악산에 이어 지리산에 불어온 케이블카 바람에서도 전남 구례군이 사업을 추진하며 경남 산청군과 협력을 모색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달 전북 남원시가 산악열차인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시범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높이 1172m로 지리산에서 차로 넘어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정령치까지 13㎞에 달하는 구간에 산악열차를 운행한다는 계획이다. 계획을 발표하자 지역 여론은 양쪽으로 갈렸다. 환영하는 이도 있지만 재원 마련과 경제성 확보, 환경영향평가 통과와 같은 문제점을 들어 반대하는 이도 많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은 앞서 하동군이 추진하던 산악열차에서 거론된 문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당시 하동군은 화개·악양·청암면 일원에 총사업비 1650억 원을 들여 12㎞ 길이의 산악열차와 3.6㎞ 길이의 케이블카 등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정부 시범 사례에 선정돼 본궤도에 오르는 듯했던 사업은 주민 사이에 극명하게 갈린 찬반 여론과 환경단체의 반발에 막혀 1년 만에 상처만 남긴 채 사실상 좌초했다.
10년 전부터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던 구례군도 바쁘게 움직이지만 순탄하지는 않다. 앞서 2012년 구례군을 비롯해 전북 남원시, 경남 산청군·함양군 등 지리산권 4개 지자체가 사업을 추진했으나 ‘조건부 부결’로 환경부 승인을 받지 못했다. 구례군은 최근에도 케이블카 설치를 신청했지만 환경부가 공익성과 환경성·기술성 부족을 이유로 지난 6월 반려했다. 그러자 곧바로 구례군은 노선 조정과 다른 지자체와 협력 등 문제점을 보완하고 재추진에 나섰다. 이렇게 되면 지리산권에 속한 경남 지자체도 가만히 있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하동군은 야심 차게 추진해 거의 손에 넣다시피 했다가 놓친 산악열차 사업을 남원시가 하려는 참이고 함양군과 산청군도 케이블카 사업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급하게 다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사업에 뛰어드는 일은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 산악열차를 추진하는 남원시는 하동군이 오래전에 겪은 지역 여론의 분열과 반발을 이제부터 겪을 가능성이 크다. 케이블카 사업도 40년을 끌어온 설악산의 예에서 보듯 오랜 기간 지역 갈등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경남 함양·하동·산청군과 전북 남원시·장수군, 전남 구례군 등 지리산권 6개 자치단체는 2008년 지리산권관광개발조합을 설립해 현재까지 지리산권 공동 발전을 위해 협력한다. 10년 넘게 이어온 우호와 협력의 관계가 그 매개가 된 지리산을 둘러싼 개발 사업 때문에 헛일이 될지도 모른다. 잡았다가 놓친 고기 같은 산악열차 때문에, 내가 갖지 못해 더 커 보이는 다른 지자체의 케이블카 때문에 조바심을 낼 이유는 없다.
개발과 보전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운 대규모 개발 사업이 얼마나 지역 여론의 분열을 불러오는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서두르다가는 민심도 잃고 환경도 망친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겸 경남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