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진행하고 있는 ‘영어상용도시 부산’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시의회가 그제 ‘글로벌 영어상용도시 및 영어교육도시 부산 추진을 위한 시와 시교육청 간 업무협약 동의안’을 심사 보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장 해당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 편성부터 비상이다. 시는 내년에 영어교육 거점센터 확대와 15분 생활권 내 영어도시 인프라 구축에 나설 예정이었다. 이들 사업에는 400억 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 8월 시와 교육청은 업무협약을 맺고 ▷영어교육 프로그램 개발 ▷권역별 영어교육센터 조성 등에 합의했다. 업무협약 체결 때 시의회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시는 긴급 추진을 명분으로 사후 동의 과정을 밟은 것이다. 사후 동의를 요구하면서도 사업 비용 추계서를 제출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박형준 시장은 지방선거 당시 “영어상용도시 조성을 통해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윤수 시교육감도 후보 시절 이에 호응했다.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에서 시민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영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시각이 많다. 공문서에도 영어병기 계획을 검토한 시의 움직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국어기본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국어기본법은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논란이 많은 사업을 시가 무리하게 추진하다 시의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시의회 김광명 기획재경위원회 위원장은 “예산과 사업 등 예측의 불확실성이 크고 다른 지자체의 실제 사례 검토와 외부 전문가의 자문 등을 거쳐 더욱 면밀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일리 있는 판단이다. 이를 계기로 부산의 공공언어 영어 남용 해소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부산에서는 지역 명칭을 영어로 짓거나 공공시설 이름에 영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풍토가 만연된 편이다. ‘달빛거리’로 하면 딱 어울릴 곳을 굳이 ‘문텐로드’로 명명했다. 최근에는 푸른 숲을 자랑하는 해운대신시가지가 ‘그린시티’로 이름을 바꿨다. 부산은 센텀시티, 마린시티, 에코델타시티 등 ‘시티 천국’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는 시민이 강제로 영어를 사용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아닐 것이다. 시도 ‘영어상용도시’가 풍기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려해 ‘영어하기 편한 도시’로 명칭을 바꿔 사업을 이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전국 100개 가까운 단체로 꾸려진 부산영어상용반대 국민연합은 오늘 백지화 시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논란은 계속 증폭될 수밖에 없다. 시는 모든 상황을 따져 더 정밀한 검토 작업에 나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무분별한 영어 남용에 따른 부정적인 요소를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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