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대학 졸업 후 바로 KBS 아나운서로 입사해 38년 방송을 했다. 지난달까지 휴일 당직에는 밤 9시 TV 뉴스도 했다. 10여 분 편성된 지역뉴스지만 아무리 짧은 뉴스라도 3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스스로 분장을 해야 하니 머리를 고데기로 말고 속눈썹을 붙이고 옷을 맞추고 예독을 하고…. 뉴스가 끝난 뒤에는 진한 분장을 지우고 헤어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딱딱해진 머리카락을 뜨거운 물에 녹여내야 한다. 밤 10시 퇴근 후 회사 근처 목욕탕으로 직행. 이 일을 38년 한 거다.
365일 쉬지 않는 방송. 아나운서 근무는 방송 시간에 따라 조근 일근 석근 야근으로 나뉘는데 아침 TV 뉴스를 맡아 조근을 하게 되면 오전 5시 비몽사몽 출근해 분장실에서 혼자 꽃 단장을 한다. 게다가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까 봐 자명종 시계 3개를 준비해 5분 간격으로 울리게하는데, 깜깜한 새벽 깜짝깜짝 놀라며 일어나는 일은 정말 고역이다. 그래서 1년 이상 조근을 하면 기력이 약해진다. 또 지역국에는 근무자가 적어 지각을 하면 대신해 줄 아나운서가 없으니 바로 방송사고다. 나도 조근 때 방송사고가 났는데 아마 잠결에 자명종을 껐나 보다. 몸이 기억해 눈을 뜨니 창밖은 환한데 눈앞은 캄캄. 앗! 어떡하지. 서울 뉴스로 대체되면서 부산 뉴스는 결방되고 난 견책이라는 징계를 받고 월급도 깎였다.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그나마 나았다. 먹여주고 깨워주고 거의 모든 걸 부모님이 챙겨주셨으니까. 그러나 결혼과 함께 시작된 부산에서의 방송 생활. 부모도 친구도 멀리 떨어져 방송과 양육, 집안 살림은 정말 힘들었다. 오직 가사도우미의 도움으로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환경. 아이가 자면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가 일어나면 같이 놀아줘야 하고 출근할 때마다 엄마 옷을 붙잡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현관문을 닫을 때 내 눈에서도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새벽마다 깨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열을 재고 병원으로 뛰어가고. 아이와 함께 눈물 콧물 흘리며 지내온 세월, 나도 엄마라는 걸 처음 해보는 거라 서툴렀고 일하는 엄마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할 수 없이 서울의 어머니가 둘째 아이를 돌까지 키워주셨는데 아무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아도 엄마 곁이 그리워서인지 잠이 들 때는 항상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년 뒤 부산에 와서는 그 버릇이 사라졌으니….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짠~하다.
갑자기 도우미가 오지 않는 날에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적도 있다. 스튜디오 밖에 아이를 앉혀놓고 방송에 들어가면 아이는 낯선 아저씨(엔지니어) 옆에서 불안에 떨고. 방송하랴 유리창 넘어 손짓발짓으로 달래랴 진땀을 뺐다.
두 아이가 중고등학교 갈 때쯤 되니 이번엔 부모님이 아프시기 시작했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투병하셨던 아버지, 자주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 주중에는 전화로 체크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가 병원에서 자며 어머니를 돌봤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웃는 얼굴로 방송을 하고. 다행히 부모님은 가족의 정성 어린 간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익숙하고 편안한 당신 집에서 돌봄을 받으셨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안식년을 맞았다. 가끔 사표를 가슴에 품긴 했지만 그만두지 않고 버텼더니 내년에는 정년퇴직이라는 선물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이 어디 나 혼자뿐이랴. 아나운서든 선생님이든 간호사든 일하는 엄마들의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서울 본사에서는 정년퇴직하는 여자 아나운서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방송사를 통틀어 내가 정년을 맞는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일 것이다.
겉으로는 우아하게, 그러나 물밑에서는 쉼 없이 물장구를 치며 살아온 삶. 그동안 애썼다 정말 수고 많았다. 그저 방송이 좋아 대학교 방송국에서도 아나운서를 했으니 마이크 앞에서만 산 세월이 40여 년. 이젠 아침마다 동동동동 뛰어다니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쉼이 필요하다.
차경애 K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