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시작 활동을 하면서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임수생(1940~2016) 시인은 부마민주항쟁을 ‘거대한 불꽃’이라고 했다. 1989년 발간된 ‘부마민주항쟁 10주년 기념 자료집’에 발표한 시인의 현대시 ‘거대한 불꽃 부마민주항쟁’을 통해서다. 기교적인 묘사와 현란한 수식어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직설적이고 강렬한 어조로 부마민주항쟁이 지닌 혁명정신을 기리고 있다. 총 2장 84연으로 구성된 이 긴 시는 항쟁의 과정과정과 결과를 속도감 있게 써 내려간 뒤 그 ‘불꽃’은 ‘민족 통일/자주와 평화를 위한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꽃이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체제에 항거해 1979년 10월 부산과 경남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4·19혁명을 비롯해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한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힌다.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인 2019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매년 10월 16일 창원과 부산에서 격년으로 정부주관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올해는 부산에서 마련됐다.
어제 부산시민회관에서 거행된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의 주제는 ‘시월의 이름들’. 1979년 10월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공헌을 되돌아보자는 의미가 담겼다. 불의에 항거한 부산과 마산 시민이 진정한 항쟁의 주역이었다. 일부 명망가 중심으로 항쟁의 의미가 되새겨지는 현실에서 울림이 있는 주제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거리로 나왔던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자유·민주·인권으로 압축된다. 그것이 ‘시월의 이름들’이 남긴 정신이다. 기념식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그런 가치를 바탕으로 “치유·통합·화합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월의 이름들’이 바라는 바다.
기념식 상징 이미지는 ‘깨꽃’. 부마민주항쟁을 ‘깨꽃’에 비유한 ‘거대한 불꽃 부마민주항쟁’ 시에서 따왔다고 하니 이채롭다.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하고 생육이 왕성한 샐비어가 ‘깨꽃’이다. ‘샐비어’로 통하는 이 꽃은 화단용 초화로 잘 쓰인다. 꽃말은 불타는 마음, 정열 등이다. 그 해 10월 독재정권에 맞선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이 ‘거대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들은 민주화 세상을 앞당기겠다는 열망으로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의 기록으로 영원히 남아야 할 ‘시월의 이름들’이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