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도청도설] 억새, 가을의 전설

  •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  |   입력 : 2022-10-18 19:34:47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최승호 시인은 “억새는 달빛보다 희고, 이름이 주는 느낌보다 수척하고, 하얀 망아지의 혼 같다”고 했다. 경남 양산 천성산(千聖山) 화엄벌의 억새를 보면 생각나는 말이다. 25만 평의 화엄벌에선 매년 이맘때면 은빛 억새의 군무가 펼쳐진다. 바람과 햇빛에 몸을 맡긴 채 자유롭게 일렁이는 억새는 집착에서 벗어난 선승을 닮았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 화엄벌의 전설이 실려 있다. 천성산에서 수도하던 원효(元曉)대사가 어느 날 중국 당나라 장안을 투시하니, 종남산 운제사 대웅전의 대들보가 썩어 무너지고 있었다.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던 1000여 명의 승려가 대들보에 깔리기 직전이었다. 원효는 즉시 판자에 ‘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救衆)’이라고 적어 운제사를 향해 던졌다. 판자가 운제사에 이르러 대웅전 앞뜰 공중에서 맴돌자, 승려들이 이를 보기 위해 모두 대웅전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대웅전이 폭삭 무너졌다. 글뜻대로 바다 동쪽 신라의 고승 원효가 판자를 던져 자신들을 구한 것이다. 이에 감동한 1000여 명의 승려가 신라로 건너와 화엄벌에서 원효의 가르침을 받고 모두 성불했다고 한다. 해탈한 듯 하얀 억새는 승려들의 화신인지도 모르겠다.

이 가을, 탈속의 자유를 만끽하는 억새가 천성산 화엄벌에만 있겠는가.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고헌산 가지산 재약산 운문산 등 해발 1000m 이상 높이의 산 7개가 밀집한 영남알프스의 억새도 화엄벌 못지 않게 장관이다. 억새 군락지의 전체 면적이 215만여 평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창녕 화왕산 정상 6만여 평의 분지에 빼곡한 억새는 흰 솜이불인 듯 부드럽다. 해발 900m 능선을 따라 이어진 합천 황매산 억새평원은 크기가 축구장 60개(18만여 평)에 이를 정도로 광활해 구름바다를 보는 듯하다. 정상 연대봉에서 구정봉까지 4㎞ 능선에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물결치는 전남 장흥 천관산의 억새는 또 어떤가.

억새는 타고난 도인이다. 자신을 비우고 바람, 햇빛과 혼연일체가 되는 게 대지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놓을수록 중력의 지배에서 풀려난 공기처럼 자유로워진다는 것도 억새는 깨닫고 있다. 그 각성은 한낮에 은빛으로 반짝이던 억새가 저물녘 스러지는 햇살 아래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날 때 절정을 이룬다. 억새의 성불이다. 억새는 그렇게 자신이 존재하는 곳을 극락정토로 만들어 간다. 억새가 빚어내는 가을의 전설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온천천 곳곳에 균열... 동래구 "대심도 공사 영향"
  2. 2보신탕의 종말?…개고기 비슷한 이것 가격 급등 무슨 일?
  3. 3테슬라, 가격 인하 약발 통했다…중국서 전기차 판매 전월보다 18%↑
  4. 4민주당, 6년만에 대규모 '장외투쟁'…국민의힘 "방탄 올인" 비판
  5. 5체감온도 무려 영하 77도?…북미 대륙에 무슨 일이?
  6. 6서울 곳곳 10만 몰려...이태원참사 100일집회 불허에도 강행
  7. 7애주가들 '한숨'…맥주·소주·막걸리도 줄줄이 오른다
  8. 8“테슬라 상폐” 트윗 무죄…美 배심원단, 머스크 손 들어줘
  9. 9입춘인 오늘 낮 최고 6~9도...내일 정월대보름 달 뜨는 시간 공개
  10. 10안전하다면 왜 수도권에 원전·방폐장을 못 짓나
  1. 1민주당, 6년만에 대규모 '장외투쟁'…국민의힘 "방탄 올인" 비판
  2. 2김기현, 나경원 자택 찾아 "힘 합치자" SOS…羅 "역할 숙고"
  3. 3민주 장외투쟁에 국힘 당권주자들 "대선불복 사법불복 접어라"
  4. 4오늘 민주당원 수천 숭례문 장외투쟁...박근혜 퇴진 이후 7년만
  5. 5다급해진 친윤의 安 때리기…장제원은 역풍 우려 몸 낮추기
  6. 6안철수 "윤핵관 지휘자 장제원" 직격
  7. 7尹 지지율 설 전보다 더 하락...긍정 부정 평가 이유 '외교'
  8. 8"지역구 민원 해결해달라" 성토장으로 변질된 시정 업무보고
  9. 9“지방분권 개헌…재원·과세자주권 보장해야”
  10. 10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 부산중·고교 총동창회장 취임
  1. 1보신탕의 종말?…개고기 비슷한 이것 가격 급등 무슨 일?
  2. 2테슬라, 가격 인하 약발 통했다…중국서 전기차 판매 전월보다 18%↑
  3. 3애주가들 '한숨'…맥주·소주·막걸리도 줄줄이 오른다
  4. 4지난 밤 네이버 카페 원인미상 오류...이용자 50분 넘게 '허둥지둥'
  5. 5[단독] 한수원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 내주 처리…7일 이사회
  6. 6[영상]스타트업 창업, 그 시작에 대한 이야기
  7. 7세계 식량 가격 10개월째 ↓...고기 소비↓, 유제품 설탕 생산↑
  8. 81053회 로또 1등 '22, 26, 29, 30, 34, 45' …당첨금은 얼마?
  9. 9에너지공단, '공공주도 해상풍력 개발' 참여 지자체 공모
  10. 10남천자이, 선착순 현장 북적… 반전 나오나
  1. 1온천천 곳곳에 균열... 동래구 "대심도 공사 영향"
  2. 2서울 곳곳 10만 몰려...이태원참사 100일집회 불허에도 강행
  3. 3입춘인 오늘 낮 최고 6~9도...내일 정월대보름 달 뜨는 시간 공개
  4. 4안전하다면 왜 수도권에 원전·방폐장을 못 짓나
  5. 5부산 대연동 재개발구역 화재로 산불…작업자 1명 경상
  6. 6이태원유족, 서울광장서 참사 100일 추모제…분향소 기습 설치
  7. 7해운대 다세대주택 전기장판 화재…거주자 1명 연기흡입
  8. 8중국발 단기체류 외국인 입국 후 PCR 의무 이후 첫 확진 0명
  9. 9백신피해 리포트 시즌2 <3>“이제 힘내 싸워보려 합니다”
  10. 10부산 기장군 일광 야산에 불…논·임야 6천㎡ 피해
  1. 1국내엔 자리 없다…강리호 모든 구단과 계약 불발
  2. 2맨유 트로피 가뭄 탈출 기회…상대는 ‘사우디 파워’ 뉴캐슬
  3. 3WBC에 진심인 일본…빅리거 조기 합류 위해 보험금 불사
  4. 4‘셀틱에 녹아드는 중’ 오현규 홈 데뷔전
  5. 5한국 테니스팀, 2년 연속 국가대항전 16강 도전
  6. 6새 안방마님 유강남의 자신감 “몸 상태 너무 좋아요”
  7. 7꼭두새벽 배웅 나온 팬들 “올해는 꼭 가을야구 가자”
  8. 8새로 온 선수만 8명…서튼의 목표는 ‘원팀’
  9. 9유럽축구 이적시장 쩐의 전쟁…첼시 4400억 썼다
  10. 10오일머니 등에 업은 아시안투어, LIV 스타 총출동
우리은행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불신 큰 지방의회 권한 확대? 다수당 견제책 등 선결돼야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단체장 권한 집중 획일적 구조…행정전문관 등 대안 고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불어 살며 지켜가야 할 피란수도 부산
55보급창은 반드시 공원이 되어야 한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낙동강 녹조를 그대로 둘 것인가
표류하는 가덕신공항
기고 [전체보기]
수산자원, 잘 이용하고 관리해야
새 단계로 진입한 중국 방역
기자수첩 [전체보기]
학교 신축 공기지연, 노조 탓만 할 수 있나요?
김해시장, 소통행정 이후가 중요하다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한국은 여기까지다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3차 세계화, 우리는 괜찮을까
‘죽어도 자이언츠’를 보면서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민심, 그 숨은그림찾기의 비밀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문화자산을 물려받는다는 것
토착화한 망자를 위한 노래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먼저 온 미래’ 영도에서 2030 부산 해법 찾기
‘부산’이라는 아이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도청도설 [전체보기]
남천삼익비치
반도체 한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너무나 완벽한 음식 식해
여러분 모두 미식가 되세요!
사설 [전체보기]
부산서 내딛는 탄소중립 소중한 발걸음
부산형 명문고, 공공기관 유치 해법 맞나
세상읽기 [전체보기]
부산진 수상비행장을 아세요?
자동차산업, 정의로운 산업전환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의사 인력 확충의 올바른 방법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험난한 선진외교의 길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새로운 해양시대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수평선을 바라보며 동백꽃을 사랑하며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위태로운 중국의 미래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신정과 설날 사이의 단상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다시 블랙리스트
정치인의 언어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근고지영
단석산 신선사의 목탁소리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새해엔 선거개혁 위한 결단 기대한다
정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이태원 연가
특별기고 [전체보기]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노엘합창단
절대음감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풍곡 성재휴의 ‘배암 나와라’
석촌 윤용구의 ‘노근란’
CEO 칼럼 [전체보기]
초고령 선진국에 걸맞은 변화
자율주행의 위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