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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과거사 진실규명과 ‘악의 평범성’

형제복지원·부마항쟁 등 국가폭력 의한 인권침해

진정한 민주주의 위해선 사건 진상 제대로 밝혀야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02 19:50:19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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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론 보도를 통해서 새삼스럽게 세상에 알려진 ‘선감학원 사건’의 실상을 접하고 보니 그 내용이 참으로 충격적이다. 지난 10월 18일 진실화해위원회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사건은 서해안 앞바다 선감도(현 안산시)에 이 시설이 만들어진 1942년 5월 29일부터 1982년 9월 30일 폐쇄될 때까지 약 40년간 정부의 부랑아 정책 및 제도에 따라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다. 부랑아로 지목한 7세부터 17세 사이의 불특정 아동을 강제로 가두어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등을 행하고 교육 기회의 박탈은 물론 심지어 생명권까지 침해한 이 사건의 진상이 그토록 오랫동안 은폐되어 왔다는 사실 자체가 또한 놀랍다.

선감학원 사건은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형제복지원 사건’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지난 8월 진실화해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191명에 대한 1차 진실규명을 결정하면서 1975년부터 1988년 동안 형제복지원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된 인원만 지금까지 657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밝힌 선감학원의 경우 개원에서 폐원까지 수용된 아동 수는 5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한 선감학원의 원아대장 분석 결과 이들 중 탈출이 824명이나 된다고 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지금까지 수십 기의 유해를 발굴했으나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감학원 사건과 형제복지원 사건은 시기적으로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의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는 두 시설이 모두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두 사건은 유신체제와 전두환 독재정권하에서 일어난 반인권적 국가폭력의 실체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두 사건은 아동이나 사회 취약계층을 상대로 저질러진 일상적인 인권침해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이번에 진실규명이 결정된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 한 가지 더 주목되는 것은 선감학원을 개원한 시점이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이 한창이던 1942년이라는 점이다. 즉,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조선감화령에 의해 개원 운영되었다가 해방 이후 미군정기에 경기도로 이관되었고 1957년 경기도가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를 제정해 직접 운영해 오다가 1982년 9월 폐쇄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적어도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 침해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반증할 뿐 아니라 그 식민지 지배의 유산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간 선후 관계상 부산 형제복지원의 반인권적 운영 방식 또한 선감학원의 운영 방식을 학습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형제복지원의 운영은 유신정권 시기 1975년 제정의 내무부 훈령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이러한 반인륜적 범죄들이 반세기 가까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고 하니,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민주화 이후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은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진실규명 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우리나라 과거사 정리의 첫 단추는 정부 수립 직후 제헌국회가 설치한 반민특위였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의 방해 공작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한국 현대사의 그늘인 국가폭력에 의한 반인권 범죄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이 일제 식민지 지배의 결과라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이나 일부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과는 얼마나 괴리된 터무니없는 궤변인가를 반증한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우리 사회는 아직도 풀어야 숙제가 많다. 지금도 과거사 진실규명을 위한 여러 위원회가 활동 중이지만, 실제 진실규명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특히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사건 관련 기관이나 가해자 측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이들의 진술 회피로 진상 조사 자체가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그와 같은 이유로 필자가 위원장을 맡고 있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해 말 의결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의 경우도 충분한 가해자 조사는 미완의 과제로 남겨놓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야당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인권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특별법을 발의해 당론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권 없이는 진정한 자유도 민주주의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폭력 범죄의 철저한 진실규명이야말로 민주화 이후 이행기 정의의 실현을 위한 핵심적 과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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