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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슬기로운 사람, 호모 사피엔스의 비밀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07 19:37:5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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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에 한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지금은 멸종돼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의 DNA 염기서열에 관한 내용이었다. 오래전 잃어버린 유전자를 통해 드러난 호모 사피엔스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림= 서상균 기자
지난달 발표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스웨덴의 고인류학자 스반테 페보가 받았다. 페보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를 연구해 DNA 염기서열을 알아냈다. 수만 년이나 지난 오래된 뼈에 남은 DNA를 추출해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염기서열을 밝히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페보는 멸균실과 PCR을 이용한 최첨단 분석기법으로 알아냈고 고인류 유전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했다. 페보는 네안데르탈인 게놈을 분석해 스웨덴 생물분류 학자 린네가 이름 붙인 ‘슬기로운 사람’ 즉, 호모 사피엔스와 비교할 수 있었다. 1996년 페보는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해독, 이듬해 유명 과학저널 셀에 발표했다. 세포핵 속에 있는 복잡하고 긴 DNA와 달리 미토콘드리아 DNA는 짧고 단순해서 연구하기에 수월했다. 뼈에 붙은 미량의 네안데르탈인 DNA를 증폭해 유전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논문은 아프리카 기원설에 부합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이 있다. 주류 이론인 아프리카 기원설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나타나 약 7만 년경에 전 세계로 퍼지며 기존 호모 속 고인류를 멸종시켰다는 주장이다. 비주류 이론, 다지역 기원설은 북경원인·자바원인 같은 직립원인 즉, 호모 에렉투스가 그보다 훨씬 오래전 여러 대륙에서 나타나 독립적인 진화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가 됐다는 주장이다.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전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살던 네안데르탈인과 직립원인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이종 교배이론과 교체이론이 대립한다. 이종 교배이론은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짝짓기를 통해 자손을 낳았다는 설이고, 교체이론은 반대로 화합하지 못해 인종학살이 일어났다는 설이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짝짓기 없이 호모 사피엔스가 기존 고인류를 멸종시키고 현생 인류로 진화했을 거라 주장한다. 페보가 셀에 발표한 네안데르탈인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은 호모 사피엔스가 이종 교배하지 않고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는 설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정반대의 증거가 나왔다. 2010년 페보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아닌 핵 속에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해독했다. 염기서열 분석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1~4% 가졌다. 드물게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간 이종교배가 일어났다는 말이다. 유전자 분석으로 페보는 현대 인류의 몸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서남아시아와 유럽에 살던 네안데르탈인과 오랫동안 공존했다. 그러면서 짝짓기가 일어났다. 약 3~4만 년 전에는 제한된 자원을 두고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하다 패해 멸종하고 말았다. 네안데르탈인 외 한때 공존한 적 있는 25가지가 넘는 호모 속의 다른 종은 모두 사라졌다. 지금은 오직 호모 사피엔스 한 종만 남았다. 그사이 현생 인류는 사라진 호모 속의 다른 종과 짝짓기를 했고 여러 유전자를 받아들였다.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진 호모 사피엔스는 기후변화와 같은 급격한 변동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생존 경쟁에서 다른 모든 생물을 능가했다. 두 손으로 불을 사용하고 뛰어난 언어 능력을 통해 다수가 협력하는 힘을 키운 호모 사피엔스는 차례차례 다른 종을 대량 멸종시켰다.

페보의 업적은 남다르다. 화석, 유적 발굴, 동위 원소 연대측정법을 통한 기존 고인류학의 방법에서 DNA 분석이라는 혁신적인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그 덕에 혼혈과 대량 학살이라는 호모 사피엔스의 숨겨진 비밀이 벗겨지고 있다. 뼛속에 남은 유전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 못했던 그 옛날 미지의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정승규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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