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선거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동안은 BNK 계열사 대표 9명 중 안감찬 부산은행장, 이두호 BNK캐피탈 대표 등 2명으로 압축돼 물밑 작업만 치열했지만 앞으로는 세간에 자천타천 거론되는 후보군까지 가세하면서 ‘진흙탕 싸움’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8, 9월 기자도 BNK 차기 회장 선거에 대한 지역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선거 관련 기사를 검토했지만 좀 더 윤곽이 드러날 때를 기다렸다. 당시 BNK 김지완 회장도 일부 기자와의 티타임에서 “안 은행장, 이 대표 모두 능력이 있는 분으로 누가 회장이 돼도 손색이 없다.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지길 바란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했다. 선거전이 과열되면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김 회장이 취임 직후 조직을 안정화한 후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내부 승계 규정을 만들어뒀기에 안정적으로 승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10월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한홍·강민국(국민의힘)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BNK 김 회장의 아들이 재직 중인 한양증권에 BNK 계열사를 동원해 투자와 대출을 진행하고, 계열사의 채권 발행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금융감독원은 공익 제보를 받은 만큼 철저한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면서 관련 계열사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이와 동시에 전국금융산업노조와 BNK부산은행노조가 즉시 금융당국의 신속한 조사를 촉구했다. BNK금융그룹과 부산은행이 있는 부산 남구 본사 로비는 물론 엘리베이터마다 김 회장의 사임을 촉구하는 현수막과 게시물이 나붙었다.
지난달 말 만난 권희원 부산은행 노조위원장은 “진상 규명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작아 보이고 위법성 여부를 떠나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김 회장을 비롯해 연루된 BNK캐피탈 등 2개 계열사 대표는 조직 안정을 위해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부 승계 원칙은 4년 전 수립된 후 지금까지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지배구조 폐쇄성 지적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라며 “이번의 의혹 제기는 그룹 내부 자정 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풍은 점점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달 말 BNK금융그룹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BNK를 중대성평가대상 기업으로 신규 지정하고 투자 목적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바꾸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굳어져 갔다. 배당 확대, 임원 해임,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 적극적 주주 활동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이 지난 4일 열린 이사회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회장직 내부 승계 규정은 무너지고 강제로 외부 후보에게 문을 열어줬다. 외풍의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했던 김 회장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결국 김 회장은 지난 7일 조기 사임했다. 사퇴 압력이 외부에서 진행될 때만 해도 버텼던 그가 조직 내부에서조차 사임을 종용하자 마음을 정리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5년간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며 BNK를 금융지주의 형태로 갖추기 위해 애썼고, 자산 규모 확대는 물론 자산 건전성 강화 등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아직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자녀 관련 의혹 하나로 조기 퇴진했다. 이와 함께 자립 문턱에 섰던 BNK금융그룹 역시 다시금 정부의 눈치를 보는 조직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수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본사 계단을 주요 임원들과 오르락내리락하며 의사결정을 해왔던 김 회장이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지난주부터는 건강 악화로 계단 걷기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1946년생으로 올해 만 76세인 김 회장은 내년 3월 BNK 회장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날 계획이었다. 불과 5개월만 기다려줬더라면 38년간 증권업계에 몸담으면서 ‘전설’로 불린 뒤 BNK금융지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받을 그가 정권 교체 후 조기 퇴진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금융계 일각에서 제기되듯 정권 교체 시기와 금융계 수장 임기를 맞춰 최소한 명예는 지켜주기 바란다.
유정환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