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8만 명의 선덜랜드는 조선업으로 한때 영국을 대표했던 도시다. 하지만 화려한 시절이 지나고 선덜랜드에 남은 것은 이제 프랜차이즈 축구단 하나뿐. 그마저도 2부 리그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죽어도 선덜랜드’는 그래도 떠나지 않는, 떠나지 못하는 팬들의 이야기이다. 축구의 태동기, 선덜랜드는 지역 교사들의 팀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역 화물노동자 구단이었다. 박지성이 뛰던 시절,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는 물론 전 유럽 최강팀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맨유 대신 당시 5, 6위권이었던 첼시에 10년 동안 1000억 원의 광고를 쏟아부었다. 런던 연고의 첼시는 귀족들이 만든 구단으로, 명품 지향의 삼성 이미지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영국인에게 축구는 생활이자 종교다. 영국 축구팬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내와 차는 바꿀 수 있어도 축구팀은 바꿀 수 없다.” 그들에게 축구클럽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성적과도 무관한,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숙명’ 같은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1년 5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제안되고 전두환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1982년 6개 팀으로 출범한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두 해 뒤다. 프로야구 출범이 무려 대통령의 결재까지 받아야 하는 중차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프로야구는 민심 수습을 위한 3S(Screen, Sex, Sports)의 하나였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 롯데의 희망 연고지는 서울이었지만 MBC에 밀려 마지못해 부산을 프랜차이즈로 하게 된다. 급조된 리그라서 변변한 응원가도 없던 시절이었다. 자이언츠는 이미 발표된 ‘부산갈매기’, 삼성 라이온즈는 ‘엘도라도’라는 미국 댄스곡을 사용했다. 압권은 호남 연고의 해태 타이거스였다. 어떻게 편곡을 해도 ‘거시기한’ 감정이 드러나는 ‘목포의 눈물’이었다. 야구장에 몰려든 관중은 경기에서 이기면 울면서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그래서 1992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전까지 해태 타이거즈는 5·18 주간에는 광주에서 홈경기를 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스포츠는 다양한 층위의 정체성이 투영되는 영역이다. 프로야구 출범 때처럼 국가와 지배집단이 스포츠를 통해 정체성을 조장, 조작하기도 하지만 대중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부산 시민은 선덜랜드처럼 ‘죽어도 자이언츠’라고 할 수 있을까? 있다면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이 되었을까?
나는 그 모멘텀이 최동원이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야구 출범 2년 뒤 자이언츠는 첫 우승을 한다. 최동원은 코리안 시리즈 7경기 가운데 혼자 4승을 거둬 팀을 우승시킨다. 엄청난 혹사였고 감독도 이를 알았다. 7차전을 앞둔 강병철 감독과 그의 대화는 여전히 전설로 남아 있다.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알겠심더. 마, 함 해 보입시더.”
우직한 최동원은 어깨가 망가질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그의 강속구는 어쩌면 암울했던 시대를 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1987년의 6월 민주화항쟁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최동원은 1988년 선수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선수협의회 결성에 앞장선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구단의 ‘빨갱이짓’이라는 매도와 트레이드였다. 아직도 전직 대통령을 향해 공공연하게 ‘빨갱이’라고 하는 세상이다.
대전 출신인 부산대 곽한영 교수는 최동원에 대해 감동적인 글을 쓴 적이 있다. “부산 사람들에게 최동원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이다. 그는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우다가 인생을 망쳤다. 우리는 그가 구단으로부터 핍박받을 때 지켜주지 못했고 당선이 보장된 민자당의 유혹을 뿌리치고 야당인 민주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낙선의 고배만을 건넸다.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도 그의 곁을 지켜 준 건 부산 사람들이 아니라 대전의 한화 이글스였다.”
2010년 2번이나 당선됐던 서울 지역구를 과감하게 버리고 부산으로 온 김영춘은 LG 팬이었던 아들에게 지역 밀착을 위해 자이언츠 회원 가입을 종용한다. “아들, 너 LG가 무슨 약자인지 알아?” “뭔데요?” “LG는 롯데 자이언츠의 약자야.” 그렇게 롯데는 ‘죽어도 자이언츠’가 되었다.
세상도 야구도 너무 많이 변했다. 공동체를 위해 단식하는 사람 옆에서 치킨을 먹어가며 조롱하고 이 내용을 유튜브로 송출, 돈을 버는 비정하고 비열하고 비겁한 세상이 되었다. 야구도 이제는 계산기와 ICT의 영역이다. 구단 가치 제고를 위한 ‘머니볼’은 상식이다. 투수들은 데이터 확보를 위해 온몸에 센서가 부착된 장비를 걸치고 연습을 한다. 타자가 공을 치면 트랙맨으로 발사 각도와 타구 속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수비할 때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별 선수에 맞춰 수비 위치를 옮긴다.
최동원은 그 유명한 ‘58개띠’다. 나도 그렇다. 우리는 고향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고향을 잃어버린 첫 번째 세대다. 고향 동구 앞 느티나무 같았던 최동원이 사망한 지 벌써 11년이다. ‘죽어도 자이언츠’, 그 표현에 나는 ‘죽어도’ 동의하지 않는다. 아디오스, 최동원 아디오스, 내 젊었던 날들이여.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