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예술계의 특징을 여러 가지 꼽을 수 있겠는데, 그중 민간 영역의 기반은 약하고 공공 영역의 기반은 강하다는 것 또한 들 수 있다. 인구가 빠져나가는 흐름은 거세고, 크고 튼튼한 기업의 비중이 낮아 소득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 보니 ‘시장’이 좀처럼 형성되지 않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도시의 크기와 인구 규모에 비춰 예술 시장이 아주 작다는 것은 민간 영역의 예술인에게는 웬만해선 극복하기 힘든 재앙에 가깝다. 아니, 그냥 재앙이다.
이런 형편에 놓인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상황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른다. 첫째 민간 예술인의 공공 지원(금) 의존도가 높아진다. 둘째 공공 예술기관의 책무와 비중이 커진다. 시장에서 생존과 수익을 놓고 쟁탈전을 펼쳐야 할 필요가 좀 적은 공공 예술기관의 비중이 높다는 것. 그리고 민간 영역의 예술인에 대한 공공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권장된다는 것. 이 두 가지 상황에서 지역 예술의 숨통이 어느 정도 틔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지역 예술을 둘러싼 온갖 문제도 여기서 생긴다. ▷공공 지원 규모를 왜 더 늘리지 않는가 ▷공공 지원을 왜 내게 주지 않는가 ▷공공 지원을 둘러싼 권력에 누가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 이 세 가지를 놓고 펼쳐지는 갈등의 비중이 민간 영역에서는 아주 높다. 거의 핵심 요인이다. 지역 공공 예술기관의 경우, 부산이라는 도시의 예술·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이들 기관이 정책·시책을 잘못 펴면 파장이나 피해가 아주 커지기 십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지역 공공 예술기관이 문제를 일으킬 때 그 원인은 우선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몸담은 지역에 대한 사랑과 지식이 없을 때 문제가 생긴다. 지역 예술을 무시하거나 지역 현실에 무지한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도시 부산은 자체 예술 기반이 지극히 약한 소도시가 아니다. 담론 형성이나 고등교육이 이뤄지는 대학이 스무 곳이 넘는다. 둘째 지역에만 매몰돼 한국 전체나 세계에서 어떤 시도·변화·발전·퇴보가 이뤄지는지 놓칠 때 문제가 생긴다. 지역주의에만 갇혀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된 부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부산의 공공 예술·문화 기관의 비전 제시와 현황 전달이 매끄럽지 못했던 장면을 본 것은 지역 공공 예술기관과 지역에 관해 거듭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이들 기관의 영향과 책무가 크다는 점을 새삼 다시 떠올린 것이다. 새 수장이 취임한 지 오래되지 않은 부산현대미술관이나 영화의전당, 큰 기획을 진행하는 부산시립미술관, 전환과 변화를 앞두고 있는 부산문화회관 등 어느 곳 하나 시민이 눈여겨보고 있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지역에 대한 사랑과 지식에 관해 먼저 살펴보자. 더구나 ‘외지’에서 기관장이 왔을 경우, 이 문제를 다루는 데서 곧잘 실수한다. ‘지역’이 눈에 잘 안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예술도 마찬가지로 잘 안 보이거나 낮게 보일 수 있다. 어떤 상황이든 지역 그 자체 또는 지역 예술의 현황·실태·자원·갈망·역사 등에 관한 파악·탐색·공부는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실수가 많아지고, 실수가 늘면 뭉친 갈등이 터지거나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허비하게 된다. 그에 앞서, 이는 지역에 대한 사랑 없음이나 업무 방기로 비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극성일 때 공연예술계는 최악 수준의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때 부산의 한 중요한 공공 예술기관이 민간 예술 단체만 대거 참여하는 신진예술페스티벌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와 함께 기획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시 그 행사를 현장에서 대부분 취재했는데, 공공 예술 기관이 지역 민간 예술계와 함께 가는 좋은 사례로 각인됐다. 이처럼 자원·안정성·기획(인)력을 갖춘 공공이 눈을 크게 뜨면, 지역 예술 자체를 더 폭넓게 진흥할 수 있다. 기획은 높낮이를 평가하는 행위가 아니라 다양한 자원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 가능성을 캐내는 일이다.
물론 시선·네트워크·비전이 지역에만 매몰돼 세계와 한국이 어떻게 바뀌고 나아가는지 그 흐름을 놓치는 사태도 피해야 한다. 자칫 이 덫에 갇히면 밖으로는 지역 시민에게서 외면받고 안으로는 지역 특유의 이해관계와 알음알음에 발목이 잡혀 발전은커녕 퇴보하는 길에 들어선다. 이는 지역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 지역 출신의 수장들이 더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 밖에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여러 가지 내부 문제도 많을 것이다. 결론을 대신해 ‘한비자’의 어법을 빌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이런 문제를 잘 풀지 못하면, 망한다.
공공 부문의 비중과 중요도가 높은 부산 예술계에서 공공 예술기관이 잘하면, 민간 부문을 비롯해 지역 예술 전체가 한 단계 성장하는 발판을 놓을 수 있다.
조봉권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