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광주시립교향악단 연주회는 올해 6월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만 18세)로 우승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자로 나서 큰 관심을 끌었다. 임윤찬은 1부 무대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하며 ‘젊은 황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폭풍처럼 질주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타건은 실황으로 목도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벅찬 감동을 안겼다. 명징한 그의 한 음 한 음에 관객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임윤찬의 연주에 많은 관심이 집중됐지만 사실 기자는 2부 공연이 이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광주시향은 2부에서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2곡을 연주했다. 광주시향은 세계적 현대음악 작곡가 고 윤이상(1917~1995)이 5·18 광주항쟁을 주제로 쓴 곡을 선택했다.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서, 그가 쓴 ‘광주여 영원히’가 광주시향 연주로 울려 퍼진 것이다. 이 곡의 원제는 ‘표본, 광주를 추모하며(Exemplum, in memoriam Kwangju)’. 군부독재 학살 세력에 맞서 5·18민주화운동이 정의·자유를 위한 인류 보편의 표본이 되길 원한다는 작곡가의 뜻이 담겼다고 한다. 광주시향 상임지휘자 홍석원은 “윤 선생의 고향에서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할 수 있어 대단한 영광이다”며 연주가 끝난 뒤 총보까지 관객에 보여주며 이례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이날 윤 선생의 곡 직전에 연주된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숨은 보석 같았다.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이 곡은 누구나 듣자마자 눈물이 흐를 정도로 비장하고 슬프고 처연하다. 바버가 1936년 작곡했는데, 19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이후 앨버트 아인슈타인, J.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 때 연주돼 진혼곡 성격이 크기 때문이다. 광주 영령을 기리는 ‘전주곡’으로서 안성맞춤이었다.
그 추모곡을 20여 일 만에 다시 들을 줄은 몰랐다.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꽃 같은 청춘 158명이 스러졌는데도, 아직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 사회 무질서와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의무임은 국가주의 자유주의 등 어떤 국가론에서도 전제하는 상식이다. 하지만 기본이 사라졌는데도 국가 핵심 관계자는 “폼나게 사표”라는 둥 “내 책임은 아니다”며 법적 책임 여부를 운운한다. 면목없이, 이태원 참사 영령에게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올린다.
이선정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