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내리막길을 달려가는데 모자가 갑자기 휙 벗겨졌다. 아무 생각 없이 날아가는 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전거 핸들도 같은 방향으로 꺾였다. 자전거는 그 자리에 딱 멈추었지만 나는 내리막을 달려오던 그 속도 그대로 앞으로 날아갔다. 머리를 보호할 요량으로 반사적으로 손으로 땅을 짚었다. 머리는 무사했다. 대신 오른 손목뼈가 부러졌다. 속도가 힘으로 전환된다는 물리학 법칙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때 내 자전거 속도는 시속 10~20㎞나 됐을까? 차량 속도에 비하면 엄청 느린데도 뼈가 부러지다니! 만약 넘어지는 순간에 내가 자전거를 붙들고 있었다면 덜 다쳤을까? 아닐 것이다. 내가 붙들어주었다면 내 몸이 쿠션 역할을 해주어 자전거는 덜 망가졌을 것이다. 대신에 나는 자전거의 무게만큼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 손이 자전거에 안전띠 역할을 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안전띠의 역할이 대단한 셈인데, 이 안전띠의 효과는 언제부터 알게 됐을까?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 당국은 전쟁 중 발생한 군용기 사고를 꼼꼼히 조사했다. 그 와중에 탑승객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 하나를 발견한다. 추락 충격으로 시트가 뜯겨 나간 사람은 앞으로 튕겨 2차, 3차 충돌로 사망했지만 시트가 제자리에 잘 붙어있던 사람은 생존율이 높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비행기 추락에도 견딜 수 있는 강한 시트, 그 시트에 잘 붙들어 매어줄 안전띠만 장착한다면 추락 사고에도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사실에서 출발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급감속(急減速)의 충격을 분석하는 연구가 시작됐다. 급정거했을 때, 다시 말하면 정면충돌 상황에서 우리 몸에 가해지는 충격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며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의 최대치를 찾는 연구였다. 연구 주도자는 공군 군의관인 존 폴 스탭이었다. 로켓엔진 썰매를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내달린 다음 급정거했다. 그 위험한 실험대 위에 놓인 시료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최종적으로는 헬멧과 안전띠에만 의지한 채 최고 시속 1017㎞까지 내달렸다. 2t의 풍압이 얼굴을 짓이겼고, 불과 1초를 약간 넘기는 짧은 시간 동안 급정거했다. 시속 193㎞로 달리다가 브레이크 없이 벽에 충돌하면 생기는 충격과 맞먹었다. 사상 초유의 순간이었다. 정지 순간에 발생한 충격량은 무려 46.2g(중력가속도), 체중의 46배에 이르렀다.
살아남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급감속에 대한 인간의 한계는 18g 정도였다. 어차피 18g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으니 그 정도의 충격량을 감안해 비행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스탭의 실험으로 인간이 의외로 더 잘 견딘다는 것이 증명되자 비행기는 더 단단히 만들어야 했다. 더 큰 충돌에도 시트는 떨어져 나가지 않아야 했고, 탑승객들은 그 시트에 잘 붙어있도록 강력한 안전띠가 장착됐다. 비단 비행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행기 사고보다 훨씬 흔한 자동차 사고에서도 탑승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 차량 안전띠 착용 의무화로 나아갔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차를 탈 때 안전띠를 부지런히 맨다.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누구라도 급감속의 충격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모두 70년 전에 자신을 기니피그 삼은 스탭의 지독한(!) 실험 덕분이다.
지난 한가위 연휴 때 수도권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확인된 안전띠 착용률은 놀라웠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각각 95.3%와 92.2%, 뒷좌석은 훨씬 낮은 49.3%에 불과했다. 사고 발생 시 안전띠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뒷좌석을 안전띠 치외법권 지역으로 방치하는 이유는 뭘까? 안 보이니까, 귀찮아서, 설마 사고 나겠어? 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고가 나면 앞좌석 사람은 안전띠 덕분에 목숨을 건지겠지만 안전띠를 매지 않은 뒷좌석 사람은 달리는 속도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간다. 중상률은 무려 99.9%에 이른다. 하지만 안전띠만 착용해도 그 위험은 10분의 1로 줄어든다.
핵가족 시대의 승용차 풍경은 앞좌석엔 부부, 뒷좌석은 아이들 차지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안전띠에 대해 엄한 부모가 돼야 한다. 사랑의 첫 덕목은 방임이 아니라 보살핌과 보호이기 때문이다.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