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어질 인(仁)이다. 그렇지만 논어에서 인을 이론적으로,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은 찾기 어렵다. 인은 논어의 모든 문장에 담겨있는 공통 원리이고 논어에는 그것을 일상에서 행하는 공자의 말과 행동이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이치를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과 진리를 향해 가는 길을 도(道)라고 한다. 물론 도라는 개념에 대해 학자마다 다르게 설명하지만 적어도 논어와 맹자, 대학과 중용에서 말하는 도는 주로 이런 뜻이다.
공자는 직접 모범을 보이는 방식으로 교육했다. 제자들에게 그런 공자는 곧 살아 움직이는 도였다. 제자들은 그런 공자를 따라 배우기 위해 경이로운 마음으로 그의 일상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모두 20편으로 구성된 논어의 중간, 제10 향당편에는 공자가 식사하고 옷을 입고 잠을 자고 집안에서 생활하는 소소한 일상이, 그리고 밖에 나와서 사람들과 만나는 장면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논어에서 마음을 뒤흔드는 거창한 문장과 웅변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논어가 대부분 이런 문장으로 구성되어있음을 느끼는 순간 지루해한다. 멋있는 말씀을 듣고 싶었는데 공자가 의자에 앉던 자세와 술자리 예절, 옷 입는 스타일까지 알아야 하는지 그야말로 따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논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바로 이것이 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공자는 물가에서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공자가 살았던 곡부 사수(泗水)의 물이 궁금했었다. 방문해서 직접 보니 엄청나게 큰 강물이 아니었다. 퇴계(退溪) 이황 선생의 호를 생각하면서 계자가 물을 의미하니, 그분이 귀향한 곳 생가 근처에 있는 물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직접 가서 보았더니 역시 거대한 물은 아니었다. 그냥 작은 시냇물이었다. 이분들에게 도는 바로 직접 대면하는 일상의 작은 일에 관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도가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道不遠人)는 중용에 인용된 공자의 말씀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왔다.
공자는 자기를 다스리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자신을 드러내고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을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막연하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一)이라는 것이 곧 자기 마음이며, 자기 수양이라는 것을 알아챈 제자가 있었다. 증자(曾子)였다. 증자는 이런 공자를 그대로 따라 했다. 그는 자기를 다스리는 일이야말로 그 자신이 공자의 제자로서, 그리고 그가 교육하는 제자들의 스승으로서 평생 계속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런 증자의 삶의 자세는 그가 운명하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제자들에게 표현되었다.
증자가 중병에 걸렸다. 그의 죽음이 임박한 것이다. 제자들을 불러 모은 증자가 말했다. “이불을 걷어내고 내 다리를 보고 내 팔을 보아라. 시경에 전전긍긍하면서 조심하고, 마치 깊은 연못가에 있는 것처럼 조심하고,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평생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제 죽으니 조심하며 마음을 졸이고 살아온 그 고생을 면하게 되었구나, 제자들아.” (曾子有疾하사 召門弟子曰 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 詩云戰戰兢兢하야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하니 而今以後에아 吾知免夫와라 小子아)
증자는 공자의 교육 방법을 이어받아서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이런 증자의 가르침은 매일 자기 자신을 3가지로 반성해본다는 삼성(三省)이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자기를 다스리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던 증자의 제자들이 논어를 편집했다.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강조한 대학도 증자의 저술이라는 학설이 있다. 중용 역시 증자의 영향을 받은 자사(子思)가 편집한 것이니 당연히 자기 수양이 중심이다. 맹자도 자사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맹자는 곧 논어 대학 중용을 종합한 자기 수양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자기 인격 수양에 힘쓰고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직역하면 어딘가 좀 부족하다. 여기서 치인(治人)은 통치자가 백성을 지배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가 인격적으로 모범을 보여서 감화된 백성이 자발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이상적인 주문이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성선설을 믿으면서 백성을 자신에게 권력을 준 하늘이라고 섬겼던 예전의 선비들에겐 당연한 말이었다. 날로 격화되는 지금의 정쟁(政爭)을 보면서,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가를 생각해보았다. 컴퓨터도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바탕인 운영체계가 있어야 하듯이, 정치에도 좋은 법과 제도가 운영되게 하는 공통의 문화적 윤리적 전통이 꼭 필요하다. 비록 오래되었지만 우리에게 있었던 자기를 다스리는 정치 전통을 현실정치의 바탕으로 복원하기를 제안해본다.
부남철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