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폴란드 국유재산부, 한국수력원자력과 폴란드전력공사·폴란드 민간 발전사 제팍이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수출 관련 양해각서와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와 손잡고 13년 만에 ‘K-원전’의 사상 첫 유럽 시장 진출이란 의미를 갖게 됐다.
이번 사업은 정부 협력을 바탕으로 양국 3개 기업이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한국형 원자로(APR1400) 수출을 추진한다는 게 핵심이다. 장소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240㎞ 떨어진 퐁트누프에 제팍이 운영 중인 화력발전소 일대다. 폴란드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6기 규모의 루비아토보-코팔리노 사업(약 40조 원)과 별도로 진행되는 민간사업이다.
한국과 기술 협력을 통해 기존 석탄 발전에서 원전 등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하겠다는 폴란드 측 목표와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꾸준한 원전 세일즈가 더해지면서 지난 8월부터 폴란드 측이 협력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성공했지만 원전 수출대국의 위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임 정부는 5년 내내 탈원전을 내세우며 국내 원전 생태계를 고사 직전으로 내몰았다. 국내에선 원전 건설을 중단한다면서 외국에는 한국형 원전을 팔겠다고 뛰어다니는 모순이 심각했다.
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선 무엇보다 원전 생태계의 복원이 시급하다. 원전은 반도체와 함께 한국이 세계 정상급 기술을 확보한 분야다. 미래 산업 먹거리 차원에서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원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우리 원전기술이 오늘날 세계 정상급에 이르게 되기까지 지도자를 비롯해 원전기술진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피눈물 나는 노력이 뒷받침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과학고문 워커 시슬리 박사로부터 “석탄이 땅에서 삽으로 캐낸 연료라면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라는 조언을 듣게 됐다.(정근모 ‘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그 조언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수시로 정전되는 자원 빈국이었던 처지에서 이 대통령의 눈을 번쩍 띄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했고, 같은 해 10월 원자력원과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이렇듯 발전을 거듭한 성과의 뒷받침 아래 우리는 폴란드에 한국형 원전수출의 길을 열 수 있었다. 폴란드는 ‘유럽의 성장률 챔피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폴란드에 대한 원전 수출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로드맵이 첫 단추를 끼웠다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동(UAE) 아프리카(이집트)에 이어 유럽 원전 시장까지 진출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원전 노형 수출은 UAE 사업 수주 이후 13년 만에 물꼬를 트게 됐다. 지난 8월 말 3조 원 규모의 계약을 따낸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건설 사업은 건물·구조물 건설과 기자재 공급 중심이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와 3파전을 벌이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 등 유럽 인접국 프로젝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국내 원전 생태계에도 단비가 됐다. 국내서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에 이집트, 폴란드 사업까지 더해지면 일감 걱정을 당분간 덜 수 있다. 특히 폴란드 사업을 따내면 원전 노형부터 기자재까지 밸류 체인 전 분야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국내 원전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원전 수출이 이뤄지면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기자재 대부분을 납품하게 된다. 최소 UAE 바라카 사업 급의 파급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원전에는 폐기물 처리 등 문제가 없지는 않은바, 인간이 만든 기술이 완벽할 수는 없다. 이미 원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도 만만치 않다. 당장 우리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는 글로벌 원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였다. 국내에 원전기술진을 양성하지 못한 공백도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폴란드 원전 수출은 이러한 현실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우리 원전생태계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홍광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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