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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중국 ‘백지 시위’

  • 이은정 기자 ejlee@kookje.co.kr
  •  |   입력 : 2022-11-29 19:54:4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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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白紙)는 종이에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국내 한 신문사가 2000년 1월 1일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독자들 스스로 무한 상상, 해석해보라는 뜻이었다. 1970년대 동아일보는 백지 광고를 낸 채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의 긴급사태 선포 등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하자 정부는 기업을 압박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주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시민은 생활비를 쪼개 백지에다가 작은 광고들을 채워주었다. 이처럼 백지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때론 불의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백지는 시위 도구로도 활용됐다. 2020년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이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일 때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엔 중국 본토에서 당국의 코로나19 규제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백지 시위로 표출되고 있다. 사태는 지난 24일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화재로 10명이 목숨을 잃은 일에서 촉발됐다. 방역 때문에 아파트가 봉쇄되면서 진화가 늦어졌다는 주장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중국인들이 동요한 것이다. 상하이의 위구르인 거주지인 우루무치중루에서는 지난 26일 수천 명이 시위를 벌였다. 또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광저우 난징 등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가 열리고 있다.

공안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고 무차별 구타를 가하자 이에 항의해 시민은 백지 시위를 펼치고 있다. 백지는 시민의 침묵 항의를 상징한다. 또 공안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를 든 시민을 체포할 수 없어 당국을 조롱하는 의미로 읽힌다. SNS에는 ‘#백지혁명’ ‘#A혁명’ 등 해시태그도 퍼지고 있다. 이번 시위가 반정부 시위 양상으로 번지자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1989년 6월 발생했던 톈안먼 사태를 연상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시진핑표 방역 정책인 ‘제로 코로나(칭링)’ 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적은 수의 확진자만 나와도 그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들을 완전 격리, 외출 불가 등으로 엄격히 통제한다. 올 들어 중국 내 하루 확진자수가 수천 명대로 폭증하면서 생활불편, 경제 침체에 따른 중국인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효성이 54%에 불과한 자국산 시노백 외에는 외국 백신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의 국가주의적 방역시스템이 시진핑 정권 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궁금하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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