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악화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의료쇼핑’이 여전히 심각하다. 하루에 한번, 연간 365회 이상 의료기관을 찾는 사람이 작년 한해에만 2550명이나 된다. 이들에게 건보공단이 지출한 급여비는 251억 원이 넘는다. 1인당으로 환산하면 1000만 원 가깝다. 일반 가입자 평균(150여만 원)의 7배 가까운 금액이다. 이런 실태는 건강보험이 집계한 외래 이용현황 통계에서 제시됐다. 나이가 아직 40대인데도 연간 1000번 넘게 병원을 다니는가 하면, 하루에 8곳을 방문한 사례도 나왔다. 보험 미가입자 여럿이 특정 가입자 명의를 빌리는 방식의 부정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치이다.
건강보험 가입자의 과잉이용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중엔 실제 반복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만성질환자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에 어긋나는 내역이 지나치게 많고 그런 사례가 계속 적발되는데도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 건 문제다. 보건전문가들이 외래 방문 일수가 연간 70일 이상인 과다 이용자의 질병을 분석해본 결과 상위 10개 상병 중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6개를 차지했고, 외래 이용 상위 20명 중 13명은 물리치료 이용자였다. 이 말은 병원을 비정상적으로 반복 출입하는 환자 중 상당수가 필수불가결한 질병 치료가 아닌 전기자극이나 마사지 같은 부수적 치료를 받는다는 의미다.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수십배 올리지 않는 이상 앞으로 재정 개선이 이뤄질 여지가 거의 없다. 전국민 고령화로 병원을 필요로 하는 소비 주체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복지 강화 차원에서 정부는 건보 적용 항목을 조금씩 늘려왔다. 최근 십수년간 개인 자부담 암 진료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건 모두 이런 의료복지 확대 정책 덕분이다. 가만히 있어도 재정 압박은 커지는데 여기에 부정이용이나 청구까지 더해지면 재정 악화 속도는 더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건강보험 수지는 날로 나빠지고 있다. 내년엔 적자 규모가 1조4000억 원에 달하고 2029년엔 적립금이 완전히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수요자만 아니다. 의료기관의 과잉진료, 사무장 병원 같은 불법 기관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수요자 관리가 재정 건전화의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던 2020년과 2021년 1인당 병원 방문횟수는 18.7일 안팎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8년(20.61일)보다 확실히 줄었고, 덕분에 작년과 올해 건보 재정이 반짝 흑자를 누린 것만 봐도 그렇다. 직장인 가입자의 보험료율은 내년에 사상 처음으로 7%대(7.09%)에 진입한다. 누군가 불필요한 의료쇼핑을 즐기는 동안 그 부담이 양심적인 가입자에게 전가되는 불합리성은 이제 해소되어야 한다. 건보 재정에 누수를 일으키는 여러 요인을 제거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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