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예학자 발터 벤야민은 1937년 쓴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라는 글에서 한 괴짜 수집가에 대해 논한다. 주로 캐리커처와 춘화, 풍속화를 수집하던 에두아르트 푹스는 당대 문화계에서는 이단에 속하는 인물이었지만 급진적 사상가 벤야민이 보기에는 시대 변화를 간파한 선구자였다. 캐리커처는 전형적인 대중예술이다. 그저 천재적 대가들의 이름값에 의존하며 지배계급 허영이나 만족시키던 박물관은 오랜 과거를 딛고 솟아오른 대중예술 시대를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다. 이 글에서 벤야민은 수집가를 박물관이라는 케케묵은 기관에 짓눌린 과거를 다시 봄으로써 세상의 변화를 선도할 영감을 얻는 일종의 혁명가로 묘사한다.
사설 컬렉션으로부터 공공 박물관으로의 변천은 한편으로는 18세기 후반부터 구미세계에서 개시된 시민혁명과 국민국가 성립이라는 역사적 ‘진보’의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집의 창조적 기능이 박탈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수집가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은 국가공무원인 전문 큐레이터다. 수집물이 전시물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본래의 시공간에서 지니던 의미를 잃고 공공의 역사적 가치에 맞도록 재편됨을 의미한다. 수집물들의 새 보금자리가 된 박물관은 누구에게나 문호가 열려있지만 동시에 감시받고 통제되는 공공기관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며 박물관은 다양해졌지만 적어도 ‘국립’박물관이라면 과거를 박제화·평준화하여 기성체제의 역사적 정당화를 위한 도구로 삼는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기관이다.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기념한다는 취지로 추진되어 2012년 말엽에 개관한 이 박물관의 첫 상설전은 지나치게 우편향된 이념에 따라 졸속으로 만들어져 “정권 홍보관”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람 온기는 없고 국가 이미지와 성장지표만 나열되는 전시가 진정 가슴 깊숙이 애국심을 자극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2020년에 새로운 정치적 여건 속에서 완전히 새롭게 개편된 상설전은 기존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부 실적을 홍보하는 대신 권력 그늘에 가려진 사람의 온기를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물론 우익세력에 의한 비판도 많았지만 진정한 애국이란 애국할만한 나라, 즉 참된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것임을 새삼 되새기게 해주었다.
‘역사관’이라는 명칭을 내건 상설전시 공간은 한국 근현대사의 통상적인 시대구분에 따라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이 있었던 1894년부터 현재까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국가의 역사를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라 국민의 갖가지 일상적 기억들까지로 확장하려 시도했다. 초등1학년 국어교과서 ‘바둑이와 철수’, 한국 최초로 프로권투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김기수 선수의 글러브, 최초의 국산 흑백 텔레비전인 금성 텔레비전 VD-191 등은 일상적 삶을 힘겹게 영위해온 우리 국민에 대한 위로와 찬사로 보인다. ‘100,001대 생산’의 실적을 이룬 실물의 포니 자동차는 전태일의 분신자살에 대한 언급과 함께 ‘국민이 일군 경제성장’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역사관 상설전은 이념적 진영으로 양분되고 편향되었던 근현대사를 좀 더 넉넉해진 국가 품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부심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제주4·3사건 및 여순사건 옆에 배치하고 같은 시기에 제정된 북한 헌법까지 소개했다고 해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끔찍한 장면을 묘사한 작은 패널화들이 반공주의의 광기를 폭로했다고 해서 좌익 편향이라고 비판한다면 옳지 않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기껏 북한과 체제경쟁하는 저급하고 편협한 수준에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차라리 진보진영에서 이 전시를 철 지난 애국주의의 발로라고 지적한다면 뼈아픈 비판일 수 있다. 물론 이곳은 대한민국 최중심부에 터를 잡고 그 헌정체제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기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혁신적 시각이 아니라 이 나라 국민의 평균적 시각을 염두에 두어야 할 기관이다. 그것이 국립박물관의 숙명이다. 벤야민식 급진주의는 근래에 부상한 ‘인권박물관’들에서 따로 모색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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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이 기관이 담보해야 할 평균적 시각이 진일보는커녕 하향 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작부터 조짐이 안 좋더니 어느새 상설전에 변화가 생겼다. ‘동북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산’이라는 참으로 구시대적인 연표가 새로이 등장하여 한 벽면을 가득 채웠고 전시 민간인 학살을 묘사한 패널화가 놓여있던 자리에는 정전협정 사진과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들어섰다. 향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전반적 후퇴에 발맞추어 전면적인 상설전 개악이 시도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광화문 옆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특별히 혁신적인 기관이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국민의 평균적 눈높이에는 맞추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