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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동백전의 배신

  • 권혁범 기자 pearl@kookje.co.kr
  •  |   입력 : 2022-12-21 19:50:4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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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화제를 뿌리며 종영한 직후였다. 동백섬에 동백꽃이 활짝 필 무렵이었다. 그 겨울,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이 세상에 나왔다. 동백전은 드라마만큼이나 사랑스러웠다. 사용하는 족족 10% 캐시백이라니! 채울 수 있는 주머니도 제법 넉넉했다. 한 달 한도 100만 원을 충전하면 110만 원을 현금처럼 쓸 수 있었다. ‘공돈’ 치고 아주 훌륭했다.

20여 년 전 발급한 신용카드 한 장으로 모든 소비생활을 해결해 왔지만, 요놈만큼은 하나 만들어야 했다. 부산 돈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고, 소상공인에게 도움도 준다고 하니 기특하기 짝 없는 녀석이었다. 앱을 깔고 발급을 신청했다. 이후 밥값 술값 커피값 낼 때마다 동백전을 꺼냈다. 퇴근길 전통시장에서 채소며 과일이며 우유도 자주 샀다. 캐시백을 모아 나름 ‘목돈’을 장만하기도 했다. 교통카드로도 썼다. 부산에서 돈 쓰는 일, 동백전 하나면 든든했다. 동백전을 한도까지 꽉 채워 충전하는 ‘의식’으로 매달 첫날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처럼 이쁘기만 했던 동백전이 항상 꽃피우지는 않았다. 금세 시들었다가, 가까스로 물을 구해다 부어주면 잠시 생기를 찾는 듯했지만 이내 또 시들기를 반복했다. 부산시는 물이 얼마나 필요한지 가늠하지 못했고, 정부는 물을 줬다 말았다 했다.

이런 탓에 월 충전 한도, 캐시백 요율은 널뛰었다. 2019년 12월 30일 출시 이후 이듬해 4월까지 100만 원, 10%였다. 2020년 6월까지 50만 원, 6%로 조정됐다가 7~11월 구간에 따라 10%까지 확대됐다. 같은 해 11월 17일 이후 연말까지는 예산이 바닥 나 캐시백이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지난해에는 국비 추가 지원이 이뤄져 연중 10% 캐시백이 유지됐다. 그러나 30만~100만 원을 오가는 한도는 종잡기 어려웠다. 결국 지금은 30만 원 충전, 5% 캐시백으로 쪼그라들었다. 말라 죽지 않을 만큼 물로만 연명하는 셈이다. 이제 한 달 최대 캐시백은 1만5000원이 전부다.

갈수록 동백전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그 요긴했던 동백전을 아예 꺼내지 않은 지도 두 달가량 지났다. ‘동백전의 배신’이 가장 큰 이유다. 동백전을 대신하기 충분한 새 신용카드도 생겼다. 석 달 전 업무상 신세를 진 측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억지로’ 신용카드를 한 장 만들었다. 그런데 요놈이 또 쓸모가 있다. 편의점 배달 도시가스 통신 요금은 물론 넷플릭스를 비롯한 디지털 구독료 등이 각각 매달 1만 원 이내에서 10~30% 할인된다. 별개로 각종 페이에 등록해서 쓰면 언제 어디서든 월 1만 원까지 추가로 깎아준다. 온라인 대형마트에서 상품별로 많게는 50%씩 제휴 할인이 된다. 이제 전통시장 가는 대신 스마트폰을 훑는다. 버스 도시철도 택시를 탈 때도 10%, 최대 1만 원을 할인해주니 동백전을 꺼낼 이유가 없다.

내년에도 동백전에 부을 물이 턱없이 부족하다. 시비는 160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줄었고, 600억 원 가깝던 국비는 0원이 될 판이다. 정부는 “지역화폐는 지역에 효과가 한정되는 사업으로 국고 지원은 적절하지 않다”며 1조 원을 돌파했던 지역화폐 예산을 ‘0’으로 끌어내렸다. 내년에는 30만 원, 5%라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민간 카드사들은 ‘지역화폐 따위 잊으라’는 자신감으로 빈틈을 파고드는데, 동백전은 갈수록 매력을 잃는다.

최근 국제신문 경제면에는 우윳값 상승에도 손님 떨어질까 봐 우유 들어간 음료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지역 소상공인 사례가 소개됐다. 동백전과 연계된 ‘동백통’ ‘동백택시’가 입을 타격이 우려된다는 기사도 보도됐다. 이런 소상공인을 돕고, 배달이든 대중교통이든 지역 내 소비를 유도해 지역경제 선순환 효과를 내자고 만든 게 동백전이다. 이런 고려 없이 ‘지역만 이득 보고, 국가에 도움 안 된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국가는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내 월급에서 소득세는 왜 떼 가느냐’는 억지 논리와 다를 게 뭔가. 동백전 꽃피울 물은 시와 정부가 함께 마련해야 한다. ‘동백전 필 무렵’ 지역경제도 꽃핀다.

권혁범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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