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하루를 살더라도 긍지를 가지고

우주력 기준 인류 문명, 단 28초 걸린 ‘사상누각’

지구 생태자원 과소비, 우리 수명도 단축 초래…종말 생각하며 변화를

유성환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이집트학 박사

  • 유성환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이집트학 박사
  •  |   입력 : 2023-01-18 20:00:20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빅히스토리’ 혹은 ‘거대사’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설명할 때 즐겨 쓰는 방법이 있다. 약 138억 년에 이르는 빅뱅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우주력’이라고 하는데 우주 진화와 생명 출현, 그리고 인류문명의 발전까지를 아우르는 이 우주적 달력에 따르면, 태양계가 탄생한 때는 9월 16일경이며 다세포 생물이 출현한 때는 12월 1일경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의 경우, 고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한 때는 12월 31일 오후 9시 25분쯤이며 초기 인류가 출현한 것이 오후 10시 24분쯤이었다. 그리고 오후 11시 59분 32초부터 농경이 시작되었으며 11시 59분 46초에 문자가 발명되었다. 요컨대 현생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끝내고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건설한 것이 우주력으로는 고작 28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우주력을 사용한 이런 식의 묘사방식은 인류문명이 얼마나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우주력을 다시 살펴보면 인간과 관련한 모든 사건이 12월 31일 단 하루 만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주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식의 묘사는 무심코, 아니면 의도적으로 인류 역사의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연해서 말하자면, 마치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서의 구절과 같이 새롭게 시작되는 1월 1일부터는 인류 앞에 무한히 밝은 미래가 무한히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갑고 어두운 우주 속 인류의 운명은 이와는 정반대일 가능성이 거의 100퍼센트다. 빅뱅 이후 138억 년이 어떻게 우리가 쉽게 실감할 수 있는 1년으로 환산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너무나도 긴 단위의 시간을 압축하다 보니 우주력의 1개월은 무려 10억 년, 우주력의 하루는 줄잡아 400만 년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6500만 년 전 멸종했다고 - 보다 정확하게는 그중 일부가 조류로 진화했다고 - 알려진 공룡의 전성기가 우주력으로는 인류가 기지개를 켜고 등장하기 불과 이틀 전인 12월 29일이다. 아무튼 우주력의 새해인 1월 1일 이후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될까?

과학자들은 한 종의 수명을 대개 100만~500만 년으로 본다. 현생인류라고 불리는 우리가 다른 영장류와의 공통조상으로부터 분화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20만 년 전이라고 하니 종으로서의 인류의 수명은 앞으로 어림잡아 80만~420만 년 정도가 남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인류가 500만 년으로 추산되는 천수를 누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우주력 1월 2일까지 존재할 확률은 슬프게도 0으로 수렴한다. 사실 앞으로 약 2만 6000년 뒤인 0시 1분까지만 살아남는 것만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온 우리 인류에게는 칭찬해 마지않을 업적이 될 것이다. 언감생심 1월 1일 반나절 동안 생존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우주력에서 인류는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그저 하루살이일 뿐이다.

‘기후위기’나 ‘지구 온난화’로 대변되는 전 지구적 위기 이야기는 이미 수십 년간 수많은 매체를 통해 지겹게 알려진 내용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한두 번쯤은 어디선가 접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 오버슈트 데이’(Earth Overshoot Day)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는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라고 하는데 인류가 망쳐놓은 환경이 지구의 순환처리 능력을 초과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1971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 ‘오버슈트 데이’는 성탄절인 12월 25일이었다. 그것이 2022년 작년에는 7월 28일 한여름에 찾아왔다. 게다가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처럼 산다면 지구의 일 년 치 생태자원이 고갈되는 날은 이것보다 훨씬 빠른 4월 2일이 된다고 한다. 나머지 9개월 동안은 내년의 자원을 미리 끌어 써야 한다. 자원만 당겨쓰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수명도 우리의 수명도 당겨지게 된다.

어차피 우주력으로는 하루를 버티지 못할 운명이니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면 반박할 재간이 없다. 그러나 ‘메멘토 모리’, 즉 종말을 인지하면 삶이 좀 겸손해진다고 들었다.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1년에 두 번 하는 문화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주력의 새해 인사는 한 번이면 족할 것이다. 비록 우주에서의 수명은 하루살이일지라도 우리가 남긴 발자국은 우주력 전체를 관통할 수도 있다. 어려울수록 빛나는 것이 긍지이다. 결코 바뀌지 않을 천형과 같은 종적 특성을 새해에는 조금이나마 거슬러 보는 것은 어떨까.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5. 5“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6. 6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7. 7[사설]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8. 8“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9. 9“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10. 10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1. 1820조 예산전쟁 개막…여야 ‘3대 메가·미래기금’ 격돌 예고
  2. 2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3. 3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4. 4‘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5. 5“7개 정당 19명 치열하게 토론…대화·설득으로 의견 일치 봐”
  6. 6민주, 조희대 ‘계엄 동조’ 여부 정조준
  7. 7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8. 8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9. 9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10. 10北, 집속탄두 위력 과시…‘축구장 18개 면적’ 초토화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5. 5편의점 번진 요거트 인기…세븐일레븐 ‘요즘’과 맞손
  6. 6부산은행 김해공항점 계속 운영
  7. 7중산층 10명 중 4명 벌이 줄었다
  8. 8롯백 편집숍 ‘시시호시’ 부산 감성 입었다
  9. 9조선 빅3 공동납품망 완성…부산 기자재 플랫폼 안착(종합)
  10. 10‘고부가 데이터’ 노린 AI해킹…새로운 보안 패러다임 급부상
  1. 1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2. 2“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3. 3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4. 4“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5. 5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6. 6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7. 7여전한 특수학교 님비 “주민체육시설 끼워 짓자” 고육책
  8. 8국힘 과반 양산시의회, 민감한 3개 안건 부결 왜?
  9. 9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10. 10“부산형 상병수당, 고령노동자도 줘야”
  1. 1“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2. 2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3. 3“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4. 4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5. 5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6. 6‘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7. 7“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8. 8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9. 9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10. 10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호감과 비호감 사이
클릭으로 여는 독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대통령의 SNS 신중함과 절제로 국정 신뢰 지켜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