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1월 스티브 잡스는 CES(미국 가전제품 전시회) 기조연설을 통해 “애플은 오늘 휴대폰을 재발명(reinvent)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손에는 아이팟·인터넷·휴대폰이 합쳐진 아이폰(iPhone)이 들려 있었다. 그 이후로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김지현은 ‘IT 트렌드 2023’에서 스마트폰이 삼켜버린 기기들을 이야기한다. MP3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내비게이션 계산기 시계 신분증 현금 신용카드 운전면허증 송금 컴퓨터와 노트북 TV 등. 아이폰의 등장 당시 업계 최강자는 핀란드 노키아였다. 듣보잡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이던 2007년, 노키아는 세계 시장 점유율 40%로 핀란드 수출의 20%, 법인세 23%를 책임지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무려 14년 동안 세계 최대 매출을 기록하던 노키아는 아이폰 등장 이후 불과 6년 만에 휴대폰 사업을 접는다.
모든 것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 애플, 이렇게 게임의 룰을 바꾸는 기업을 우리는 게임 체인저라고 부른다. 스마트폰 다음의 게임 체인저는 어떤 디바이스가 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전기자동차를 지목한다. 사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먼저 1882년 등장했던 ‘오래된 미래’다. 전기차가 다시 돌아온 것은 2008년 테슬라의 첫 모델인 ‘로드스타’ 때부터다.
왜 다시 전기차인가? 첫째는 온실가스 규제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약속한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세계 신차 판매량의 60%가 전기차 같은 무공해차량이어야 한다. UN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PCC는 기온 상승의 마지노선인 지구 온도 1.5도 상승시기를 지난번 예측보다 12년 빠른 2040년으로 전망한다. 산업혁명 때보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면 바닷물 높이가 높아져 부산의 해수욕장과 주요 항만, 산업공단이 물에 잠기게 된다. 둘째는 자율주행차로 가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인 데이터 수집을 위해서도 전기차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전기차는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틱톡 아마존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테슬라는 자기가 만든 전기차를 사용자의 운전 습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기존 보험사보다 20~40% 싸게 자동차보험을 판매하기도 한다. 사실 자동차보험은 빅데이터 분석에 따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위치와 이동, 사용 앱 등 운전자의 모든 것이 빅데이터로 수집돼 분석되면 맞춤형 광고와 맞춤형 상품, 서비스 제공까지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이폰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이 전기차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율주행시대가 되면 더욱더 그렇겠지만 지금 수준에서도 전기차는 엄청난 미래 먹거리인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승용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은 3% 수준이지만 블룸버그는 2030년에는 28%, 2040년에는 58%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떤 수준일까? 1958년 부산 전포동에서 미군 차량의 폐부품 조립으로 시작한 한국 자동차산업은 기적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한국 현대자동차그룹은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다. 첨단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분야도 경쟁이 가장 치열한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 포드에 이어 3위다. 포드의 전기 트럭을 제외하면 승용차 부문에서는 2위다. 하지만 미국 의회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은 자국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최대 7500달러, 약 1000만 원 정도를 지원한다. 현대 전기차는 2025년 미국 내 공장이 완공될 때까지 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대 전기차는 테슬라 같은 고품질이 아닌 보급형이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가 마케팅 대상인데, 이들이 테슬라보다 비싸진 현대 전기차를 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판매를 지탱했던 1달러당 1400원 대의 고환율도 지금은 1300원 아래다.
IRA법의 주 타깃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이다. 미리 정보를 입수해 대응한 일본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덩달아 피해를 당하고 있다. 실제 IRA법 통과 이후 미국 내에서 현대 전기차 판매는 급속하게 위축됐다. 작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한 윤석열 대통령이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글로벌펀드 재정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간 스탠딩 회담을 가진 것도 IRA 때문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또는 ‘날리면’ 논란이 일었던 그 회담이었다. 그 이후 여러 차례의 협의를 거쳐 미국은 리스와 렌트 차량에 대해서는 종전대로 지원해주기로 했지만 이 시장은 미국 전기차 시장의 겨우 5% 수준이다. GM 포드 도요타 폭스바겐이 현대의 전기차 시장을 잠식해가면 2년 뒤에 다시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지금은 디지털 전환이 만드는 3차 세계화의 세상이다.
보스는 입으로 지시하는 사람이고 리더는 말 대신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이다. 구한말 세계 동향을 읽지 못하고 왕의 권위를 지키는 데 급급했던 조선은 결국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빛바랜 신자유주의 주장이 다시 창궐하는 지금, 우리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