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길가메시의 눈물

후대 기록자가 삭제한 초인적 영웅의 ‘나약함’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 눈물을 지우고있나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  |   입력 : 2023-02-08 19:56:15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혼자 울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데 일단 자기 방에서 나오면 눈물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렵기도 하고 인간적인 면이 있다며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친구를 얻을 수도 있다. 그 사회의 통념과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눈물의 무게가 달라진다.

고대 서아시아에서 창작된 문학작품 중 ‘길가메시 서사시’는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는데, 초자연적인 힘과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는 길가메시가 흘린 눈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길가메시가 둘도 없는 친구를 잃고 울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고 필사본마다 남아 있지만, 앞날이 막막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울었다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길가메시가 흘린 눈물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이 작품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필사하며 성장을 거듭한 결과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가장 보존이 잘 된 토판은 기원전 7세기에 니느웨 왕궁에서 쓴 것으로 토판 열두 개에 아카드어로 기록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작품은 기원전 21세기나 그 이전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문서는 일단 메소포타미아 문명 초기에 사용했던 수메르어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 수메르어 판본의 아카드어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수메르어 필사본들은 통일성이 있는 한 작품이 아니라 주인공 이름이 길가메시라는 사실 외에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여러 편의 이야기로 발견되었다. 길가메시가 하늘의 황소와 싸운 이야기와 삼나무 숲을 지키는 괴물과 싸우러 가는 이야기가 서로 관련이 없는 작품이었고, 심지어 후대의 ‘길가메시 서사시’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이야기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길가메시가 엔키두에게 삼나무 숲을 지키는 후와와를 치러 가자고 제안하는 장면을 수메르어 판본은 이렇게 묘사한다. 길가메시는 인간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슬퍼하며 산에 올라가서 큰 업적을 세우고 자기 이름을 남기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의 종 엔키두는 그 숲을 태양의 신 우투가 관리하고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신이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자 길가메시는 흰 염소와 갈색 염소를 우투 신에게 제물로 드리면서 자기 계획을 허락해 달라고 빈다. 우투 신은 처음에 재물과 사회적 지위를 다 가진 그의 소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길가메시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인생이 허무할 뿐이라고 간절하게 호소하자 “그의 눈물을 예물로 받았고” 그에게 신화적인 힘을 가진 군사들까지 주면서 청을 허락한다.

여기서 ‘예물’이라는 수메르어 낱말 자체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뜻하며, 길가메시가 드린 염소 제물보다 눈물로 마음을 열어 드렸을 때 그것을 기쁘게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제도권 종교의 제의에 상반되는 진실한 종교심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미 수메르 시대부터 이런 종교사상이 움트고 있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같은 장면을 후대 아카드어 판본으로 읽으면 엔키두가 엔릴 신이 지키는 숲이라고 말리는 것도 마다하며 길가메시가 모험을 떠나겠다고 하는데, 그는 인생이 유한하다는 말을 하긴 하지만 주로 사내의 영웅심을 부추기며 엔키두를 설득하려 한다. 여행을 위해 태양신에게 기도하는 자도 길가메시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이고 태양 신이 특별한 계시를 내려주지도 않는다.

이 문단은 길가메시가 삼나무 숲의 괴물과 싸워서 이긴다는 아카드어 판본 이야기의 도입부에 불과하고 요약된 줄거리만 읽는 사람들은 쉽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장면이다. 다른 말로 하면 왕궁에 소속된 유능한 서기들은 토판 열두 개를 들여 방대한 분량의 서사시를 기록하면서 영웅 길가메시의 눈물을 삭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메르어 판본에서 길가메시가 열어 보였던 진심은 후대 사람들의 눈에 불편한 진실일 뿐이었고 그의 업적을 가리는 불필요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니느웨는 서아시아 최대의 제국인 앗슈르의 수도였고 그 왕궁에서 생산하는 작품은 개인의 진심보다 올바른 정책 목표를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적 검색으로 길가메시를 찾아보면 우리말로 ‘길가메시 서사시’를 번역한 단행본과 판타지 소설과 동화책과 만화책까지 마흔 종이 넘는 책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책들도 길가메시의 눈물을 소개하고 있을까? 이런 책들을 사서 읽는 독자들은 현대 대한민국 사회가 어떤 눈물을 드러내고 어떤 눈물을 지우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을까?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면서 살 때 눈물을 흘릴 일이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가 자기 눈물에 취하지 말고 이웃의 눈물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3. 3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4. 4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5. 5“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8. 8[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9. 9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10. 10[사설]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5. 5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6. 6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복권판매점 늘어난다…정부, 우선계약 대상에 14만명 추가
  10. 10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4. 4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5. 5[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6. 6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0. 10“국제신문 지켜야” 시민단체 대표·원로 29일 법원 앞 선다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3. 3‘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어떤 ‘최장수’ 기록
프랑스를 망친 결정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동행명령 외면한 지광스님, 법적 책임 물어야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