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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현대판 ‘피휘’

  • 정상도 기자 jsdo@kookje.co.kr
  •  |   입력 : 2023-02-15 19:37:1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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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고전 ‘논어’(論語) 원서를 강독하는 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 있다. ‘논어’가 공자 어록이니 ‘자왈’(子曰)로 시작하는 구절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로 해석한다. ‘공자’(孔子)라고 적힌 경우엔 “공자”라고 읽으면 된다. ‘자’에 존칭의 의미가 담긴 까닭이다. 문제는 공자의 이름인 구(丘)다. 아무 생각없이 “구”라고 했다간 훈장 선생의 꾸지람을 감수해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고 가문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이나 집안) 숫자가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며, 가난을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논어’ 20편 가운데 열 여섯 번째인 ‘계씨’편 1장의 유명한 구절이다. 이는 ‘구야문’(丘也聞·내가 들어보니)으로 시작되는데, “구”가 아니라 “모”(某)라고 읽어야 한다. 이것이 피휘(避諱)다. 국어사전을 빌면 국왕 조상 성인이 쓰는 이름 국호 연호와 같은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관례다. 존중받아야 할 대상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겠다는 각별한 의미가 담겼다. 대구시의 한자가 원래 ‘大丘’였으나 조선시대 때 감히 공자 이름을 쓸 수 없다는 유생의 상소에 따라 ‘大邱’로 바뀌었다는 게 예다.

무슨 고리타분한 이야기냐 하겠지만 북한에서 현대판 피휘라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딸 김주애에 관한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발사 후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등장하더니 지난 8일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엔 그 자제분이 제일로 사랑하는 백마가 나온 것도 모자라 이젠 그 자제분 사진을 담은 우표까지 제작했다. 그 사이 ‘사랑하는 자제분’은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격상됐다.

한 술 더 뜨는 건 평안북도 정주시와 평안남도 평성시 등에서 ‘주애’라는 이름을 쓰는 주민들에게 개명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도 최고지도자와 같은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으며 김정은 시대가 출범할 때도 개명을 종용했단다. 아무리 백두혈통의 과시라 하더라도 열 살 먹은 ‘자제분’ 띄우기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북한이 올해 농사가 대단히 절박한 초미의 과제라고 규정하며 식량난의 심각성을 자인했다”는 우리 정부 평가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논어’가 2500년 세월을 이어오는 건 피휘와 같은 이른바 꼰대짓이 아니라 공자가 제시한 ‘인’(仁), 즉 사람을 사랑하라는 인의 정치 덕분이다. 북한 정권은 핵무기 개발에 앞서 ‘이밥에 고깃국’으로 북한 주민 보살피기를 우선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논어’를 제대로 읽어야겠다.

정상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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