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이어지는 산복도로 일대를 구경했다.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눈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산복도로는 산허리를 개발하면서 맨 위쪽에 자리한 도로다. 다른 도시에서는 찾기 힘든 부산만의 관광포인트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부산으로 몰렸다. 평지가 적은 부산 지형 특성상 타지에서 온 이들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산비탈에는 판잣집이 들어섰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산복도로는 어린이들의 웃음 소리로 떠들썩했다. 지금은 대부분 주민이 고령의 어르신들이다.
화려한 빌딩 불빛과 부산항대교를 배경으로 산복도로 골목길을 구비구비 걷다 보니 이런 현실을 더 실감했다. 어둠에 가려져 있으나 빈 집이 많았고 아예 집을 허물어 공터로 남겨진 곳도 있었다. 인구 감소, 고령화 위기가 부산에 닥쳤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젊은층의 이탈과 고령화·저출산으로 암울한 미래를 맞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양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다. 많은 혜택을 누리다 보니 지역으로 이전해 사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KDB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둘러싸고 반대하던 노조가 회사 측이 본점 직원 수십 명을 부산 등 동남권에 발령을 내자 가처분 신청을 지난 8일 제기했다. 노조의 법적 대응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아니면 사람 살 곳이 안 된다는 뜻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 전국 제2의 도시 부산으로 본점을 이전하라는 데도 이런 식으로 반발하는데 다른 도시로 공공기관을 이전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부산시는 산업은행 등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부산형 명문고를 설립할 계획이다. 시가 특정인을 위한 학교를 지어가면서 공공기관을 유치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각 지자체가 공공기관 유치에 혈안인 이유는 인구 유입과 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보면 부산 울산 경남이 추진했던 ‘부울경 특별연합(메가시티)’ 무산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다. 부울경 특별연합은 지난 3년간 지방자치법 개정, 자치단체 규약 행정예고, 행정안전부 규약 승인 등 절차를 밟아 구성됐다. 지난해 4월 광역교통망 구축, 경제협력 체계 조성 등 공동사무를 진행하기로 부울경이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실익이 없다”며 메가시티 불참을 선언했다. 부울경 단체장은 특별연합 대신 초광역 경제동맹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남도의회와 울산시의회에 이어 부산시의회도 최근 부울경 특별연합 규약 폐지안을 가결했다. 메가시티 출범을 열망하던 이들은 부산시의회가 다른 결정을 해주길 기대했다. 결국 행정안전부 장관의 승인을 받고 고시되면 규약은 최종 폐지된다. 오랜 시간 부울경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한 규약이 이렇게 무용지물이 되는데 석 달밖에 걸리지 않다니 허망하다. 시민 호응이 컸던 사안을 정치인들의 입김으로 단번에 뒤집는 게 민주주의인지 의문스럽다. 폐지에 대한 의견 수렴없이 메가시티 규약을 없애는 부울경을 보고 중앙 정부가 어떻게 바라볼지 민망하다.
부산경실련은 지난해 12월 부산시장을 상대로 ‘부울경 초광역 경제동맹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메가시티 폐지 결정 과정에 위법성이 있고 관련 절차를 중지해달라는 것이다. 첫 재판은 다음 달 3일 열린다. 혹자는 이미 끝난 일이라고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부산경실련의 소송은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다. 정치인들의 행동을 시민 사회가 감시하며 잘못된 결정을 묵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가시티를 지지했던 시민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하겠다.
메가시티가 됐든 경제동맹이 됐든 지방 소멸을 막고 부울경이 함께 발전할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초광역 경제동맹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초반부터 가시밭길이다. 경제동맹 사무국은 4급 공무원이 사무국장을 맡고 각 3개 시·도에서 3명씩 직원을 파견해 10여 명으로 구성한다. 이는 메가시티 합동추진단 사무국(사무국장 3급, 인력 28명)보다 규모나 위상이 많이 쪼그라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무국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에 대응하려면 사무국 위상이 중요한데, 사무국장의 직급이 낮아 업무 처리가 쉽지않다. 이는 태생부터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없다 보니 예견된 일이다.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다. 경제동맹이 올 한해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적거린다면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부울경 단체장은 경제동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역사적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심을 저버리는 정치인은 살아남기 힘들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