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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봄의 낭만에 대하여

  •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  |   입력 : 2023-03-05 19:24:3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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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성큼 다가왔다. 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 몰려와 천둥번개가 소란을 피운다. 어느덧 구름은 걷히고 새들은 다시 아늑한 봄의 분위기 속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표제음악의 선구자 ‘안토니오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의 소네트)

봄이 찾아오는 독일 모젤지역의 포도밭.
포도밭에서 봄이 시작되는 3월은 포도나무에 새순이 움트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새순 발아 시기는 포도품종과 날씨에 따라 매년 일정하지 않다. 토양도 발아시기에 영향을 미치는데 차가운 성질의 점토에 비해 좀 더 따뜻한 모래 토양에서 일찍 발아된다. 가지치기는 3월 내내 진행되며 포도밭의 열 사이마다 쟁기질을 해 토양에 공기가 통하게 한다. 가지치기하고 난 가지들은 주변 공기를 따뜻하게 하고 서리로부터 새순을 보호하기 위해 주로 밤에 모닥불을 피울 때 사용한다. 새순은 해충과 질병에 약하기 때문에 예방제를 뿌리기도 하고 토양이 따뜻해지면 오래된 나무를 뽑아낸 자리에 새로 포도나무를 심기도 한다.

양조장에서는 지난해 수확해서 만든 와인의 발효가 끝나고 죽은 효모 껍질 과육 등 침전물을 걸러내어 깨끗한 스틸탱크나 오크통으로 옮기는 통 갈이를 한다. 레드와인과 좀 더 풍성한 스타일의 화이트와인을 양조하는 경우에는 2차 발효를 한다. 이 과정에서 말산이 좀 더 부드러운 유산으로 바뀌면서 와인에 원만하고 풍성한 느낌이 가미되는데, 특히 화이트와인은 버터 같은 특징을 띠게 된다. 반면 파삭한 화이트와인을 만들 때는 온도를 낮게 조절해 유산 발효 과정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발효가 끝난 와인은 대부분 바로 병입하지만 스틸이나 오크통에 넣어 숙성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고급와인은 오래된 오크통 또는 새 오크통에 숙성시켜 복합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숙성되면서 와인의 5%는 오크통의 나뭇결을 통해 증발되기 때문에 매일 오크통을 가득 채워야 한다. 이렇게 손실되는 와인을 ‘천사의 몫’이라는 낭만적인 말로 표현한다.

포도밭의 포도나무에 수액이 차오르고 양조장 안에서는 와인이 익어가는 봄, 많은 사람들이 포도나무와 와인의 신비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낭만적인 계절이다.

하지만 와인생산자는 포도밭과 양조장에서 최상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온전히 1년의 시간을 투자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 공자의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처럼 그들의 삶은 숱한 세월 수없이 반복되는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을 경험과 노력으로 극복한 인내의 시간이다.

삶에는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았던 기억, 어려움을 견디며 이겨낸 경험이 있다. 그렇게 지나온 힘들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그래도 나름 낭만적인 삶이었다. 평범한 일상에도 낭만은 늘 숨어 있기 마련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 (알렉산드로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오래된 울퉁불퉁 옹이투성이 나무에도 새싹이 움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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