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2’가 오는 10일 공개된다. 고교 시절 끔찍한 괴롭힘에 시달렸던 동은(송혜교)의 복수와 허물어지며 맞서는 가해자 연진(임지연)이 뼈대다. 시즌2 첫 두 편을 맛보기 하는 온라인 시사회에 참여한 후배가 전해준 관람평이다.
지난해 12월 30일 선보인 ‘더 글로리 시즌1’은 2주 만에 8200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글로벌 비영어권 1위에 올랐다. 드라마 제작자 입장에서야 시즌제로 작품을 쪼개면 이슈를 길게 끌며, 그만큼 수익도 더 늘릴 수 있다는 현실적인 셈범으로 3개월 시차를 뒀겠지만 그 시점이 참으로 공교롭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학교폭력을 직시하는 내용만큼이나 후폭풍이 만만찮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지만, 드라마가 사회 현상이 되는 세상이다. 이 민감한 이슈가 정치 쟁점이 됐다. ‘더 글로리 시즌2’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처럼 다층적이다.
정순신 사태는 피해자와 가해자만 남자로 바뀐 ‘더 글로리 현실판’이라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전국 3만 수사 경찰을 총지휘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임명 하루 만에 어이없이 낙마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추천을 받아 지난달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국가수사본부장이다. 그런데 25일 사의를 표명했고, 대통령실은 이를 받아들였다. 26일 2년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 아들의 문제가 상식을 뛰어넘는다. 동급생에게 “돼지새끼” “빨갱이” “사료나 처먹어라”는 언어폭력을 일삼았다. 이 학생이 학교에 신고했더니 “장난이었다”고 해명했단다. ‘아빠 찬스’가 더 공분을 자아냈다. 그 아들의 아버지 정 변호사는 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갔다. 그 아들은 서울대에 입학했으나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에 자살 시도까지 했다. 윤 대통령이 “피해자가 버젓이 있는데 어찌 검사라는 공직자가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느냐”고 격분했다니 정 변호사를 손절한 배경을 짐작할 만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검사 출신 변호사의 흠결이 왜 공직 임명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느냐이다. 겉으론 정 변호사가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의 한 문항인 ‘본인 또는 배우자, 직계 존비속이 원고·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형사 소송이 있습니까’에 ‘아니오’라고 답했기 때문에 걸러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정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2018년 서울중앙지검장이었을 때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다. 당시 아들 소송 문제가 ‘고위직 검사’로 언론에 공개됐다. 게다가 정 변호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한 장관을 빼놓을 수 없는 건 정 변호사의 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장관은 이와 관련,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발을 뺐다. 또 “정무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도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냐”는 기자 질문엔 “아니오”라고 선을 그었다. 국가수사본부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따라 2021년 신설됐다. 검찰 출신이 본부장에 오르는 것을 두고도 논란의 대상이 될 사안인데, 당사자가 낙마해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다.
당연히 윤 대통령의 검찰 중시 인사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정 변호사 낙마에 이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상근전문위원에 검사 출신 변호사가 선임되자 더불어민주당이 “만사검통, 검찰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또 검찰 출신 장관급 인사가 권영세 통일부 장관과 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4명, 차관급 인사가 박성근 총리 비서실장, 이노공 법무부 차관 등 8명, 대통령실에 복두규 인사기획관, 윤재순 총무비서관 등 7명이라고 꼽았다. 비단 이들 뿐일까. 정 변호사가 아들 문제를 ‘아니오’하고, 한 장관이 인사 검증 책임에 ‘아니오’ 할 수 있는 건 공고한 검찰 카르텔을 넘어 과연 공정한 사회냐는 문제 제기를 자초하는 일이다. 검찰 출신이 아니면 사람 대접이나 받겠느냐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10일은 윤 대통령에게 뜻깊은 날이다. 지난해 3월 9일 실시된 20대 대통령 선거는 치열했다. 당락이 확정된 건 10일 오전 5시50분께 99.8% 개표가 이뤄질 무렵이었다. 최종 득표율 48.56%로 0.73%포인트 24만7077표 차이였다. 헌정사상 최소 득표 차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3시57분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패배 승복을 선언한 직후 자택에서 나와 “밤이 아주 길었다”고 대선 승리 소감을 밝혔다. 그로부터 1년, ‘공정과 상식으로 국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를 기치로 내세우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윤 대통령은 그 초심에 얼마나 충실했냐 따지는 기준으로 ‘만사검통’이란 지적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아주 긴 밤을 보내고 있다고 여기는 국민이 많다.
정상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