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뉴스와 현장] ‘선택적 추모’를 넘어

  • 정유선 기자 freesun@kookje.co.kr
  •  |   입력 : 2023-03-29 19:31:36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나의 제주여행은 4·3을 알기 전과 4·3을 알고난 후로 구분될 것 같다. 유채꽃 흐드러진 샛노란 제주를 그렸는데 3월말 방문한 제주는 쌀쌀한 빗방울이 흩날리는 무채색에 가까웠다. 축축한 바람에는 왠지 붉은 핏방울의 내음이 묻어나는 듯 했다.

제주 봉개동 4·3 평화공원 전시관에 입장하면 아무런 비문도 쓰여지지 않은 채 누워있는 ‘백비’를 마주하게 된다. 4·3백비는 75년이 되도록 이름 짓지 못한 아픈 역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 등으로 불려왔지만 4·3 뒤에 붙일 정확한 이름은 아직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긴 설명을 가질 뿐이다. “제주 4·3사건이란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는 게 공식 정의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인 3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4·3이 세상에 알려진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4·3은 낯설고 우리와는 관계 없는 제주만의 역사로 보인다. 제주가 4·3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4·3의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를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남의 일 같았다.

이번에 4·3사건 75주년 계기 프레스투어를 통해 평화공원 위령비를 꼼꼼히 훑어보고,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애기무덤을 직접 보고, 관덕정 터와 원도심 유적까지 4·3의 기억들을 오롯이 살려보고 나서야 제주가 얼마나 피와 눈물이 사무친 땅인지를 알게 됐다. 여전히 제주 곳곳엔 4·3 희생자 영령을 추모하는 현수막과 ‘4·3은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라는 보수단체 현수막이 뒤엉켜 나부끼고 있었다. 여전히 진영별로 갈리는 이념의 구호로 제주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맞는 올해 제75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불참한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지난해 당선인 신분으로 4·3 추념식에 참석해 국민 통합 메시지를 발신했던 윤 대통령이 올해는 일정 등의 이유로 불참을 알린 것이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번 4·3 추념식 당일 제주4·3 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6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선 처음으로 참석해 국가폭력에 의해 이뤄진 희생에 대해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누구의 죽음을 얼마나 더 추모할 것이냐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문제다. 가히 ‘추모의 정치’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며칠 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제2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등에서 전사한 55명의 장병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울먹였다. 윤 대통령은 이후 다른 자리에서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장병을 생각하면 어찌 평정을 유지할 수 있나”고 되물었다고 한다. 당시 기념식 이후 대통령실에는 유족과 장병뿐만 아니라 예비역 군인들과 많은 국민의 격려가 쏟아졌고 ‘이제야 나라가 정상적으로 가는 것 같다’는 반응들이 나왔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그러나 이를 보도한 기사에는 “이태원 청춘들하고 서해 청춘들은 다른가” “꽃다운 나이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일제 피해자들은 왜 외면하느냐”는 등 부정적인 댓글도 달렸다.

‘누구의 죽음은 잊혀지고, 누구의 희생은 기억될 것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추모의 대상도 달라져왔고, 국가보훈처도 그에 맞춰 각종 보훈행사의 격과 비중을 달리해 왔다. 정권에 따라, 이념과 진영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뤄져온 추모가 이제는 좀 달라지길 바란다.

좌우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 국민 통합에 앞장서겠다며 작년 제주 4·3과 광주 5·18을 잇따라 참석했던 윤 대통령이 초심을 잃지 않기를, 누구의 죽음도 소외되는 일 없이, 국민 전체의 마음을 보듬어 안고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유선 서울 정치부 차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성폭행 당하고도 가해자 낙인” 59년의 恨 대법은 풀어줄까
  2. 2추신수, 부산고에 소고기 50㎏ 쐈다…황금사자기 첫 우승에 동문도 ‘들썩’
  3. 3“영화계·시민 모두의 소리 듣겠다” BIFF 12일 쇄신 간담회
  4. 4대행체제 시설공단, 먹튀 논란 교통공사…공석 대표자리 인선 주목
  5. 5‘택시 등 대중교통비 인상 전 의견수렴 의무화’ 조례 시끌
  6. 6“과외앱 통한 만남 겁난다” 정유정 후폭풍에 탈퇴 러시
  7. 7U-20 3연속 4강…브라질·잉글랜드 차례로 격파
  8. 8훈육하다…싸우다가…자녀 살해한 부친들
  9. 9각막손상 적은 스마일 수술, 격한 활동 잦은 이에게 ‘딱’
  10. 10U-20 월드컵 축구 한국 2회 연속 4강 진출 쾌거
  1. 1‘택시 등 대중교통비 인상 전 의견수렴 의무화’ 조례 시끌
  2. 2“천안함 자폭” 논란 이래경, 민주 혁신위원장 9시간 만에 사의(종합)
  3. 3북한 위성 재발사 임박? 설비 이동 움직임 포착
  4. 4민주 혁신위원장 이래경 ‘천안함 자폭 발언’ 논란에 사의
  5. 5황보승희 정치자금법 수사…與 초선 풍파에 교체론 커지나
  6. 6[정가 백브리핑] ‘영원한 형제’라던 권성동·장제원, 상임위서 또 이상기류
  7. 7尹 지지율 5주 연속 상승세 꺾이고 약보합..."野 공세 효과 아직"
  8. 8이래경 민주당 혁신위원장, 임명 9시간 만에 사퇴(종합)
  9. 9대통령실, KBS TV 수신료 분리징수 위한 법령 개정 권고
  10. 10국회 부산엑스포 특위도 4차 PT에 힘 보탠다.
  1. 1주가지수- 2023년 6월 5일
  2. 2부울경 매출 5000억 이상 상장사 지난해 39곳…성우하이텍 전국 순위 14계단 상승
  3. 3지난달 라면 물가 13% 급등…금융위기 이후 최고 상승
  4. 4부산서 10월 'OTT 국제행사' 열린다…"투자 유치 도모"
  5. 5정규직 전환 성공한 인턴들 비결은
  6. 6프린터시장도 친환경 바람..."레이저 프린터 비켜~"
  7. 7올해 우윳값 얼마나 오를까… 소비자는 불안하다
  8. 8생필품 10개 중 8개 올랐다(종합)
  9. 9"지난해 대중 수출 4.4% 감소…중국 외 시장에선 9.6%↑"
  10. 10김영득 부산항만산업총연합회장, 바다의 날 기념식서 은탑산업훈장
  1. 1“성폭행 당하고도 가해자 낙인” 59년의 恨 대법은 풀어줄까
  2. 2대행체제 시설공단, 먹튀 논란 교통공사…공석 대표자리 인선 주목
  3. 3“과외앱 통한 만남 겁난다” 정유정 후폭풍에 탈퇴 러시
  4. 4훈육하다…싸우다가…자녀 살해한 부친들
  5. 5부산 52만 명 감정노동 시달리는데…권익보호 외면하는 부산시
  6. 6해파리 곧 출몰한다는데…해수욕장 차단망 내달께 설치
  7. 7‘감정노동현장’ 콜센터 취업기 <하> 빚 권하는 사회 비판하면서…‘카드 돌려막기’ 권유 회의감
  8. 8“父 4번 입대해 2차례 참전…총알 피했지만 병마로 쓰러져”
  9. 9복지부 장관 “2025년 입시땐 의대정원 확대”
  10. 10“탄소중립도시로 성장을” 부산환경운동연합 선포
  1. 1추신수, 부산고에 소고기 50㎏ 쐈다…황금사자기 첫 우승에 동문도 ‘들썩’
  2. 2U-20 3연속 4강…브라질·잉글랜드 차례로 격파
  3. 3U-20 월드컵 축구 한국 2회 연속 4강 진출 쾌거
  4. 4세트피스로 ‘원샷원킬’…최석현 95분 침묵 깬 헤딩골
  5. 5알바지 UFC 6연승…아랍 첫 챔프 도전 성큼
  6. 6프로 데뷔전서 LPGA 제패한 슈퍼루키
  7. 7한국 U-20 월드컵 2회 연속 4강..."선수비 후역습 통했다"
  8. 8기세 오른 롯데도 “스윕은 어려워”
  9. 9‘부산의 딸’ 최혜진, 2년7개월 만에 KLPGA 정상
  10. 10맨체스터의 주인은 맨시티
우리은행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
황령산 봉수전망대에 보내는 간곡한 바람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바뀐 것이 원인이다
낙동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기고 [전체보기]
당신이 부산에서 다치면 안 되는 이유
제28회 바다의 날을 보내며
기자수첩 [전체보기]
BIFF 사태, 단순 내부갈등으로 치부될 일인가
업자에 돈 빌려준 경찰들…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었다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한일회담, 그들의 영구집권은 가능할까?
한국은 여기까지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3차 세계화, 우리는 괜찮을까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학생의 날’이 있다면
“거울아, 거울아!” 그 중독의 마법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피리와 히치리키
엑스포와 나비효과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산은, 새 성장축 발전에 동참하길
‘소통 부재’를 해결하는 법
도청도설 [전체보기]
국가대표의 품격
애덤 스미스 300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김해 뒷고기
명태 산업
사설 [전체보기]
콜센터 저임금·감정노동스트레스 해법 찾아라
‘안전과 속도’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할 가덕신공항
세상읽기 [전체보기]
6·25전쟁, 의사, 그리고 부산
증거에 기반한 최저임금 인상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간호법 제정안과 지역사회 보건의료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새로운 해양시대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가족에게 감사의 꽃을 드립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국경제 괜찮은가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그림의 맛, 돈의 맛
중세의 혐오와 공감의 정치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밥의 길, 쌀의 미래
원전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세계의 대전환, 2030 부울경세계박람회
근고지영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되살리려면
대통령의 초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내게서 멀어지는 것들
새옹지마
특별기고 [전체보기]
한일관계, 기초 제대로 잡아가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어린이를 위한 음악
두 마리 토끼, 콘골트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남농산수화’의 탄생
의재 허백련의 한국적인 산수화
CEO 칼럼 [전체보기]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부산을 꿈꾸며
지역서도 유니콘 기업 나와야 한다
  • 부산항쟁 문학상 공모
  • 부산엑스포키즈 쇼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