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원도심은 지붕 없는 박물관?

뮤지엄 개념 실외로 확장…佛·日 지역 경제·생태 살려

부산근현대역사관 등 꿰면 문화유산 체험의 장 가능

류승훈 부산시 학예관

  • 류승훈 부산시 학예관
  •  |   입력 : 2023-03-29 19:28:15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올해는 매화가 좀 늦게 핀 것 같다. 기다리던 매화의 은은한 향기와 함께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것은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이다.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본관)과 부산근대역사관(별관)을 묶어 부산근현대역사관으로 재개관하기 위해 문을 닫은 지가 햇수로 벌써 3년이 지났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본관의 개관은 올해 연말로 예정되어 있으므로 그 모습을 알 수가 없다. 다만 3월 초에 개관한 별관으로만 본다면 개방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건물 원형을 살리기 위해 중층을 철거하면서 1층 로비 공간의 개방감이 높아졌다. 로비 공간은 라키비움(larchiveum)으로 사용된다.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의 용도가 결합한 곳으로 앞으로 원도심을 방문한 시민의 명소가 될 게다.

이따금 나는 부산근현대역사관을 건립하기 위한 자문회의에 참석했다. 이구동성으로 나온 자문 중의 하나는 원도심을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견해였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의 조성사업은 이 미션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원도심은 지붕 없는 박물관!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멋진 말은 참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우리 머릿속에는 건축적 모습을 띤 정형화된 박물관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지붕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야 전시실 속의 빛나는 명품을 볼 수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마치 미지의 세계와 같은 수장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뮤즈(muse)의 신이라면 ‘지붕 없는 박물관’에 대해 뭐라고 화답할까. 잘 알다시피 박물관(博物館)은 ‘뮤지엄(museum)’이다. 뮤지엄의 개념은 뮤즈의 신에서 유래했다. 뮤즈는 음악의 신이거니와 학술과 예술을 관장하는 학예의 신이기도 하다. 연원으로 보건대 뮤지엄은 유물이 보관된 수장고이자 예술품을 선보이는 전시관이었다.

1990년대 출간된 한 답사기에서 ‘우리나라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고 선언했다. 당시에 많은 독자가 이 주장에 박수로 환영했다. 국토가 박물관일 정도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많을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보려면 박물관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고정 관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후 박물관의 개념이 뮤즈의 건축물에서 서서히 바깥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야외박물관’, ‘에코(ECO)뮤지엄’이란 용어가 공공연히 사용되었고, ‘지붕 없는 박물관’은 더 쉽게 상상하도록 해줬다.

‘지붕 없는 박물관’은 우리의 시선이 건축물 바깥의 인간 생태계로 향한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보존할 문화유산은 박물관에도 있지만 광활한 생태계에 더 널려 있다. 에코 뮤지엄이 시작된 프랑스에서는 지역 경제와 생태를 살리기 위해 박물관이 활용되었다. 일례로, 농가가 사라지고 농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전통가옥과 마을 길을 복원하고 체험 행사를 운영하는 알자스 에코뮤지엄이 등장했다. 일본에서 설립된 에코뮤지엄에서는 주민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시민이 주도하여 만든 기타큐슈시 에코뮤지엄은 공업도시가 남긴 환경 오염의 문제점을 경각시키고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박물관이었다.

원도심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원도심의 역사 콘텐츠와 생활문화에 대한 진지한 조사를 아직 보지 못했다. 주민들이 힘을 합해 원도심권을 역사문화유적으로 가꾸자는 주장도 나오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여전히 용두산 아래의 근대역사관이 견고하고,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오래된 책이 서가를 지키며, 깡통시장에는 전국의 관광객들이 물결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는데 원도심의 구슬은 굴러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함께 공감하고 지원한다면 흩어진 구슬을 모아 꿰는 실은 금방 찾을 것 같다.

‘지붕 없는 박물관’의 핵심은 ‘걷는 박물관’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의 과정이 아니라 코스를 연계하여 네트워크로 묶는 것이다. 사실 최고의 선택은 지붕을 걷어내기보다는 ‘지붕 있는 박물관’과 ‘원도심의 문화유적’을 끈끈이 연결하는 것이다. 지붕이 있고 없음의 프레임에 갇힐 게 아니라 박물관 안과 바깥이 밀접히 연계되어 원도심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으로, 강고한 문화 네트워크로 꽃피우게 하는 것이 최적의 전략이다.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원도심을 역사문화의 꽃밭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경제적 이득으로만 따지면 ‘지붕 없는 박물관’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더 멀리 보고 늦어도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꽃을 피우게 한다. 매화가 늦게 피어도 괜찮다. 본관이 좀 늦게 개관해도 괜찮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아름다운 개화이기 때문이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떠오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성폭행 당하고도 가해자 낙인” 59년의 恨 대법은 풀어줄까
  2. 2추신수, 부산고에 소고기 50㎏ 쐈다…황금사자기 첫 우승에 동문도 ‘들썩’
  3. 3“영화계·시민 모두의 소리 듣겠다” BIFF 12일 쇄신 간담회
  4. 4대행체제 시설공단, 먹튀 논란 교통공사…공석 대표자리 인선 주목
  5. 5‘택시 등 대중교통비 인상 전 의견수렴 의무화’ 조례 시끌
  6. 6U-20 3연속 4강…브라질·잉글랜드 차례로 격파
  7. 7“과외앱 통한 만남 겁난다” 정유정 후폭풍에 탈퇴 러시
  8. 8U-20 월드컵 축구 한국 2회 연속 4강 진출 쾌거
  9. 9훈육하다…싸우다가…자녀 살해한 부친들
  10. 10각막손상 적은 스마일 수술, 격한 활동 잦은 이에게 ‘딱’
  1. 1‘택시 등 대중교통비 인상 전 의견수렴 의무화’ 조례 시끌
  2. 2“천안함 자폭” 논란 이래경, 민주 혁신위원장 9시간 만에 사의(종합)
  3. 3북한 위성 재발사 임박? 설비 이동 움직임 포착
  4. 4민주 혁신위원장 이래경 ‘천안함 자폭 발언’ 논란에 사의
  5. 5황보승희 정치자금법 수사…與 초선 풍파에 교체론 커지나
  6. 6[정가 백브리핑] ‘영원한 형제’라던 권성동·장제원, 상임위서 또 이상기류
  7. 7尹 지지율 5주 연속 상승세 꺾이고 약보합..."野 공세 효과 아직"
  8. 8이래경 민주당 혁신위원장, 임명 9시간 만에 사퇴(종합)
  9. 9국회 부산엑스포 특위도 4차 PT에 힘 보탠다.
  10. 10대통령실, KBS TV 수신료 분리징수 위한 법령 개정 권고
  1. 1주가지수- 2023년 6월 5일
  2. 2부울경 매출 5000억 이상 상장사 지난해 39곳…성우하이텍 전국 순위 14계단 상승
  3. 3지난달 라면 물가 13% 급등…금융위기 이후 최고 상승
  4. 4부산서 10월 'OTT 국제행사' 열린다…"투자 유치 도모"
  5. 5정규직 전환 성공한 인턴들 비결은
  6. 6프린터시장도 친환경 바람..."레이저 프린터 비켜~"
  7. 7올해 우윳값 얼마나 오를까… 소비자는 불안하다
  8. 8생필품 10개 중 8개 올랐다(종합)
  9. 9"지난해 대중 수출 4.4% 감소…중국 외 시장에선 9.6%↑"
  10. 10김영득 부산항만산업총연합회장, 바다의 날 기념식서 은탑산업훈장
  1. 1“성폭행 당하고도 가해자 낙인” 59년의 恨 대법은 풀어줄까
  2. 2대행체제 시설공단, 먹튀 논란 교통공사…공석 대표자리 인선 주목
  3. 3“과외앱 통한 만남 겁난다” 정유정 후폭풍에 탈퇴 러시
  4. 4훈육하다…싸우다가…자녀 살해한 부친들
  5. 5부산 52만 명 감정노동 시달리는데…권익보호 외면하는 부산시
  6. 6해파리 곧 출몰한다는데…해수욕장 차단망 내달께 설치
  7. 7‘감정노동현장’ 콜센터 취업기 <하> 빚 권하는 사회 비판하면서…‘카드 돌려막기’ 권유 회의감
  8. 8“父 4번 입대해 2차례 참전…총알 피했지만 병마로 쓰러져”
  9. 9복지부 장관 “2025년 입시땐 의대정원 확대”
  10. 10“탄소중립도시로 성장을” 부산환경운동연합 선포
  1. 1추신수, 부산고에 소고기 50㎏ 쐈다…황금사자기 첫 우승에 동문도 ‘들썩’
  2. 2U-20 3연속 4강…브라질·잉글랜드 차례로 격파
  3. 3U-20 월드컵 축구 한국 2회 연속 4강 진출 쾌거
  4. 4세트피스로 ‘원샷원킬’…최석현 95분 침묵 깬 헤딩골
  5. 5알바지 UFC 6연승…아랍 첫 챔프 도전 성큼
  6. 6프로 데뷔전서 LPGA 제패한 슈퍼루키
  7. 7한국 U-20 월드컵 2회 연속 4강..."선수비 후역습 통했다"
  8. 8기세 오른 롯데도 “스윕은 어려워”
  9. 9‘부산의 딸’ 최혜진, 2년7개월 만에 KLPGA 정상
  10. 10맨체스터의 주인은 맨시티
우리은행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
황령산 봉수전망대에 보내는 간곡한 바람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바뀐 것이 원인이다
낙동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기고 [전체보기]
당신이 부산에서 다치면 안 되는 이유
제28회 바다의 날을 보내며
기자수첩 [전체보기]
BIFF 사태, 단순 내부갈등으로 치부될 일인가
업자에 돈 빌려준 경찰들…전세사기 피해자 두 번 울었다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한일회담, 그들의 영구집권은 가능할까?
한국은 여기까지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3차 세계화, 우리는 괜찮을까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학생의 날’이 있다면
“거울아, 거울아!” 그 중독의 마법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피리와 히치리키
엑스포와 나비효과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산은, 새 성장축 발전에 동참하길
‘소통 부재’를 해결하는 법
도청도설 [전체보기]
국가대표의 품격
애덤 스미스 300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김해 뒷고기
명태 산업
사설 [전체보기]
콜센터 저임금·감정노동스트레스 해법 찾아라
‘안전과 속도’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할 가덕신공항
세상읽기 [전체보기]
6·25전쟁, 의사, 그리고 부산
증거에 기반한 최저임금 인상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간호법 제정안과 지역사회 보건의료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새로운 해양시대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가족에게 감사의 꽃을 드립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국경제 괜찮은가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그림의 맛, 돈의 맛
중세의 혐오와 공감의 정치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밥의 길, 쌀의 미래
원전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세계의 대전환, 2030 부울경세계박람회
근고지영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되살리려면
대통령의 초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내게서 멀어지는 것들
새옹지마
특별기고 [전체보기]
한일관계, 기초 제대로 잡아가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어린이를 위한 음악
두 마리 토끼, 콘골트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남농산수화’의 탄생
의재 허백련의 한국적인 산수화
CEO 칼럼 [전체보기]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부산을 꿈꾸며
지역서도 유니콘 기업 나와야 한다
  • 부산항쟁 문학상 공모
  • 부산엑스포키즈 쇼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