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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 이해인 수녀·시인
  •  |   입력 : 2023-04-20 19:45:0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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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가 전하는 말



새는 나에게/ 제일 먼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

나서지 않고도 사랑하는 법을/ 뒤에 숨어서도 위로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지

내가 힘들 때면/ 언제나 새를 부른다

산에서도 날아오고/ 내 마음 속에서도 날아오는/ 희망의 새

새가 있어/ 세상은 낯설지 않은/ 나의 집이 되었다



후투티가 날아와 수녀원(부산 수영구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마당에 앉았다. 사진이 조금 흐린 이유는 후투티의 산책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이해인 수녀가 멀리서 당겨서 찍었기 때문이다. 이해인 시인 제공
4월이 점점 깊어 어느새 하순이 되었습니다. 진달래 개나리 라일락 수선화 튤립 제비꽃 민들레 등등 온갖 봄꽃들이 피어나고 하얀 나비 벌들도 날아오니 어찌나 즐겁고 황홀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새들의 합창도 들려오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네’ 혼잣말로 감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평소에 자주 보긴 힘든 후투티 새가 날아와 한참을 놀다 가니 그야말로 인디언 추장 같은 깃과 특별한 색을 지닌 몸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두 다리가 아파 걸음도 불편하고 기억력이 자주 가출하여 머리도 무거운 노년을 살다 보니 새의 가벼운 몸짓이 더 부럽고 신기하여 그들의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합니다. 지인들이 산책하다 특별한 모양의 새를 보거나 어디선가 새가 알을 낳은 모습이 눈에 띠면 꼭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곤 합니다.

조류도감이나 새에 대한 그림책을 옆에 두고 보아도 새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해 안타까울 적이 많습니다.

혈압을 재고 혈당을 체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거운 환자로 살고 있는 지금, 무게를 덜 내는 데 필요한 음식 절제도 제대로 되지 않아 고민이 많아지는 지금, 마음껏 가볍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새처럼 가벼운 몸과 발걸음으로 경쾌한 일상을 사는 동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결심해 봅니다. 더 이상 타성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의 비행을 잘하는 수행자가 되리라고! 희망의 날갯짓을 하는 한 마리 새가 되어보리라고.



2) 그동안 새에 대한 시들을 꽤 여러 개 썼는데 어느 영성 잡지의 부탁을 받고 쓴 이시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불리울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시장 터나 절에서도 노래를 들은 청중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노래 부른 가수 김정식 님이 말해주었습니다.

가난한 새의 기도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무게가 주는 슬픔이 없다’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겸손하게 비워내는 노력을 해야 할지요. ‘사랑을 위한 가난’의 선택을 순간마다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꽃으로 써본 ‘웃음’.
3) 해마다 4월이 되면 꼭 한 번씩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4월이 울고 있네’를 작사·작곡한 노영심을 제가 출강하는 대학에 초대해 벚꽃 흩날리는 교정에서 함께 부르기도 했지요.



나의 눈에는/ 사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봄비가 내리는 소리/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나의 귀에는 사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창문 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 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보아도 너를 잊을 수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내 사랑을 믿어도 될까

네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

창문 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 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 보아도 너를 잊을 수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나의 사랑을 믿어도 될까

네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1960년 4월 19일 여중생으로 겁에 질려 간접으로 참가하게 된 4·19혁명의 핏빛 투쟁이 생각나는 4월입니다. 2002년 4월 15일 김해 돗대산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160여 명의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기억하게 되는 4월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탑승자 416명 중에 304명이 희생된 비극을 눈물 속에 다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4월입니다. 오랜 세월 지났어도 잊혀질 수 없고 잊혀져도 안 되는 슬픔에 마음으로나마 동참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는데 수녀들처럼 수수한 옷을 입은 까치가, 잔디밭에 고운 옷을 차려입은 딱새가 나무 위에 앉아 봄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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