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5월 하늘에 퍼지는 하프 연주자의 노래

죽음을 사색함으로써 삶의 즐거움을 되새긴 옛 이집트의 노래처럼

생명의 계절인 5월에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

유성환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이집트학 박사

  • 유성환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
  •  |   입력 : 2023-05-03 19:30:38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여러 유물이나 문헌을 보면 이들이 죽음을 ‘본향으로의 귀환’이나 ‘평온한 안식’으로 여겼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들이 죽음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 역시 필멸의 운명을 부여받은 인간의 처지를 탄식했으며 아무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죽음 뒤의 불확실한 상황에 전전긍긍하면서 부활과 영생을 위한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보다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모든 기쁨과 쾌락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이집트 문학 중 ‘하프 연주자의 노래’라는 장르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이 명칭은 귀족들의 주연이나 장례식의 절차 중 하나로 행해지던 장례 연회에서 다른 악사 무희들과 함께 활약했던 맹인 연주자가 하프를 연주하는 장면과 함께 그가 음송했던 가사가 분묘의 내벽이나 석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데 착안해 현대 이집트학자들이 붙인 것이다. 특히, 같은 종교적 시가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찬가와는 달리 공식적인 신전 의례 등에서 낭송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프 연주자의 노래’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와 진솔한 감정을 보다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이 가능했다.

이들 ‘하프 연주자의 노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인테프 왕묘의 하프 연주자의 노래’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집트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는 다른 회의적인 정서가 부각된다.

“아무도 그곳에서 돌아오지 않았네, / 자신들의 처지를 말해주고자, 자신들의 운명을 말해주고자, / 우리의 심장을 달래 주고자, 우리가 그들이 떠나간 곳으로 가기 전까지는! // 그러니 그대의 심장을 기쁘게 하라! / 염려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그대의 심장을 따르라. / 머리에 몰약을 바르고 고운 아마 옷을 입고 / 몸에는 신에게 어울리는 귀한 기름을 바르라. / 즐거움을 높이고 심장이 가라앉지 않게 하라. / 심장이 원하는 대로 지상에서의 일을 행하라. / 그대를 애도할 날이 왔을 때 심장이 지친 이는 그들의 애도를 듣지 않으며 / 그들의 울음이 사람의 심장을 무덤으로부터 구하지 못하니.”

이런 노래가 흥겨운 연회 도중에 울려 퍼졌다면 확실히 분위기는 싸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집트의 다양한 풍습을 기록했던 헤로도토스를 빼놓을 수 없다. ‘역사’에서 그는 이집트에는 이처럼 연회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드는 관례가 있다고 기록한 바 있다.

“저녁 식사 후 개최되는 아이깁토스의 부자들의 연회에서는 한 남자가 나무로 시신처럼 보이게 만든 것을 관에 넣고 방 안을 도는데, 실감 나게 색칠하고 조각한 이 시신을 길이가 1 내지 2페퀴스쯤 된다. 그 남자는 연회에 참석한 손님 한 사람마다 그것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것을 보시며 즐겁게 마시세요. 당신도 죽으면 이렇게 될 테니까요.’ 아이깁토스인들은 연회 때 그렇게 한다.”

실제로 파라오 시대의 연회에도 이런 관례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와 유사한 파토스를 유발하는 공연이 연회의 일부를 이루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은 가능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기원전 1000년 이후에는 ‘하프 연주자의 노래’라는 장르가 명맥을 잇지 못하고 소멸해 버린다. 장르가 소멸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가 바뀌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이는 장르의 생성과 소멸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인 만큼, 그에 대한 반응도 대체로 항구적이고 보편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때나마 ‘하프 연주자의 노래’라는 장르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집트에서는 죽음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집트인들은 죽음에만 집착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인테프 왕묘의 하프 연주자의 노래’가 삶의 즐거움 쪽으로 가파른 기울기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이 내세에서의 영생을 희구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세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과 행복을 부정하거나 배격한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서로 다른 존재의 두 양태가 모두 똑같이 소중했던 것이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불쑥 죽음이라는 달갑지 않은 주제를 꺼내 보았다. 만물이 되살아나고 약동하는 시기에 차분히 모든 것의 종말을 잠시나마 곱씹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의 심장을 기쁘게 하라! / 염려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그대의 심장을 따르라.”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협성르네상스 브랜드 잠정 폐업
  2. 2인구감소지역 ‘임대형 실버타운’ 도입…동명대·신라대 시니어 시설 구축 탄력(종합)
  3. 315조 시금고 유치…부산銀 등 7개 은행 치열한 눈치작전
  4. 4다대포해변서 ‘열린음악회’…신나는 공연에 불꽃쇼·나이트 풀파티도
  5. 5이름·사업 닮은 공공보건시설…중복 논란에 시-구·군 갈등
  6. 6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56> 이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 최정란 부이사장
  7. 7예술작품 품은 호텔가…고객들 ‘눈 호강’
  8. 8[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3> 제주 소울푸드, 자리돔
  9. 9국힘 새 대표 한동훈 “당원·국민 변화 택했다”
  10. 10‘어대한’ 벽 깨지 못한 친윤계 ‘배신자 프레임’
  1. 1국힘 새 대표 한동훈 “당원·국민 변화 택했다”
  2. 2‘어대한’ 벽 깨지 못한 친윤계 ‘배신자 프레임’
  3. 3‘민주당 해산’ 6만, ‘정청래 해임’ 7만…정쟁창구 된 국민청원
  4. 4與 신임 최고위원 장동혁·김재원·인요한·김민전
  5. 5당내 분열 수습, 용산과 관계 재정립…풀어야 할 숙제 산적
  6. 6野 ‘윤석열·김건희 쌍특검’ 발의…檢 내홍 속 독립성 훼손 논란까지
  7. 7조승환·서지영·곽규택 예결위 배속…박수영 정치력 빛났다
  8. 8부산시의회, 퐁피두 분관 MOU 동의안 가결
  9. 9與 박성훈, ‘김호중 방지 및 음주운전 3회시 영구 면허 박탈법’ 발의
  10. 10[속보] 합참 “북한, 쓰레기풍선 띄워”…경기북부로 이동 중
  1. 1협성르네상스 브랜드 잠정 폐업
  2. 2인구감소지역 ‘임대형 실버타운’ 도입…동명대·신라대 시니어 시설 구축 탄력(종합)
  3. 315조 시금고 유치…부산銀 등 7개 은행 치열한 눈치작전
  4. 4예술작품 품은 호텔가…고객들 ‘눈 호강’
  5. 5전국 특구 1000개 시대…유사특구 통폐합 목소리 높다
  6. 6美·日서 인정받은 용접기…첨단 레이저 기술로 세계 공략
  7. 7[속보] 외신 “삼성전자, 4세대 HBM 엔비디아 테스트 통과”
  8. 8“해상풍력, 정부가 주도하게 할 특별법 조속 제정을”
  9. 9‘SM 시세조종 혐의’ 받는 벤처신화…유죄 확정땐 카카오뱅크 등 직격탄
  10. 10삼성전자 ‘마이크로 LED’ 부산 전시공간 확대
  1. 1이름·사업 닮은 공공보건시설…중복 논란에 시-구·군 갈등
  2. 2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56> 이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 최정란 부이사장
  3. 3'160㎜' 부산 새벽 호우경보에 노인 1명 고립 등 피해 잇따라(종합)
  4. 4절삭유 20t 흘러들어간 하천…뿌연 물결 위로 물고기 떼죽음(종합)
  5. 5부산서 새벽에만 160㎜ 폭우…80대 고립 등 침수피해 속출
  6. 6김해 유통단지 재정비사업 탄력
  7. 7밤새 경남에 천둥·번개 동반 최대 150㎜ 폭우…나무 전도·도로 침수
  8. 8美 항공모함 드론 불법 촬영한 중국인들 경찰에 붙잡혀
  9. 9오늘의 날씨- 2024년 7월 24일
  10. 10부산·울산·경남 흐리고 가끔 비…예상 강수량 5∼30㎜
  1. 1남북 탁구 한 공간서 ‘메달 담금질’ 묘한 장면
  2. 2부산아이파크 유소녀 축구팀 창단…국내 프로구단 첫 초등·중등부 운영
  3. 3마산용마고 포항서 우승 재도전
  4. 4남자 단체전·혼복 2개 종목 출전…메달 꼭 따겠다
  5. 5부산항만공사 조정부 전원 메달 쾌거
  6. 6롯데 ‘안방 마님들’ 하나같이 물방망이
  7. 7“부산국제장대높이뛰기대회 위상 높이도록 노력”
  8. 8격투기 최두호 UFC서 8년만에 승리
  9. 9기절할 만큼 연습하는 노력파…듀엣경기 올림픽 톱10 목표
  10. 10아~ 유해란! 16번 홀 통한의 보기
부산시의회 후반기 출범
예산권 보장 지방의회법 제정 본격화, 행정통합·맑은 물 사업 등 지원 총력
부산시의회 후반기 출범
상임위 7곳 중 6곳이 초선 위원장, 구의회 경험 바탕 ‘전문성’ 기대감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산재보험 60년, 이순(耳順)이기를 바란다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구의 양의 되먹임 현상
에어컨의 대명사에 남긴 이름
국제칼럼 [전체보기]
윤리가 없는 AI가 만들 ‘위험천만한 세상’
길 들이기와 길 들지 않기
기고 [전체보기]
허치슨터미널, 우리나라 1호 기록에 도전하다
AI의 일상화와 창작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위선’ 일망정 ‘공감’과 ‘배려’를 보고 싶다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공존과 양립으로서의 국악 컬래버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좋은 사람 되기
실력·인성 갖춘 축구 ‘레전드’ 정용환이 그립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청문회장의 연예인
‘육상 김’
메디칼럼 [전체보기]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
미래 한국 의료는 어디로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가마보코에 매료된 조선인
대만과 밀크피시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 키우기 1원칙 ‘운동’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사설 [전체보기]
국민의힘 한동훈호 출범…‘변화’로 망가진 보수 살릴까
‘100일 기침’ 백일해 유행…여름철 호흡기 질환 주의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아르테미스
7월은 산업안전보건의 달?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심해 유전 140억 배럴, 영일만과 산유국의 꿈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푸틴의 행보와 러시아 경제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수영에서 ‘역사도시’ 부산을 보다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건강과 재물을 얻는 명당아파트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호주 와인과 보랏빛 수영장
오페라 와인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정헌의 ‘밥이 하늘이다’
‘꽃피는 부산항’에서
CEO 칼럼 [전체보기]
변화하는 모터쇼와 부산모빌리티쇼의 도전
위기가 기회로!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