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19혁명 이후 장면 내각은 대기업 총수 24명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자유당 정권 시절 급성장한 배경에 부정 축재가 있었다는 혐의였다.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자처리법을 마련하는 등 이들을 처벌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 와중에 5·16군사정변이 발생했다. 그런데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이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과 면담 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박 부의장은 경제단체를 만들어 정부 산업 정책에 협력할 것을 요구했고, 이 사장은 ‘경제재건촉진회’를 조직해 화답했다. 이 단체 명칭은 ‘한국경제인협회’로 바뀌었고, 1968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변경됐다. 이른바 전경련의 출범이다. 이 사장이 모델로 삼은 것은 일본경제단체연합회, 소위 ‘게이단렌’이란 일본 대기업 연합조직이었다.
전경련은 대기업 주도의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며 정부 정책에 충실히 협력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보태는 등 성과도 냈다. 하지만 전경련의 태생적 한계는 정경유착이었다. 일본 집권 세력에 자금을 대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게이단렌을 모델로 삼았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경련은 설립 당시부터 권력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했다. 역대 정권 때마다 숱한 문제를 야기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 전경련은 최순실(최서원) 씨가 깊숙이 관여한 미르, 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에 주도적으로 나선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태로 전경련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에 놓였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모두 탈퇴했다. 지난 3월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회장직을 사임한 이후 차기 회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주요 경제단체 회담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경제 대표 단체의 지위는 대한상공회의소로 넘어갔다.
전경련은 지난 18일 혁신안을 발표하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55년 만에 명칭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는 취지다. 권력과의 단절,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주도,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 확산 진력, 혁신 주도와 일자리 창출 선도 등 내용을 담은 ‘윤리헌장’을 제정할 계획이다.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은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있었다. 과거의 역할과 관행을 통렬히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전경련의 모든 문제는 정경유착에서 잉태됐다. 새 출발은 이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전경련이 국민의 박수를 받는 경제단체로 거듭나길 바란다.
박태우 서울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