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신창원 부산교도소 탈옥사건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교도소를 벗어나 907일간 벌인 그의 도주 행각은 무수한 이야기를 뿌렸다.
1989년 3월 저지른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신창원은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감돼 복역했다. 그가 탈옥한 것은 1997년 1월이었다. 노역장에서 구한 실톱날 조각으로 하루 20분씩 2개월간 화장실 쇠창살을 몰래 잘랐다. 마침내 쇠창살 2개가 끊어지자 감방을 빠져나와 외벽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끊은 쇠창살로 20m 정도 떨어진 교도소 내 신축 중이던 교회 철담장 밑 언 땅을 파내 공사장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주운 밧줄을 타고 외부로 통하는 펜스를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갔다.
신창원은 탈옥을 위해 15㎏가량 몸무게를 줄였으며 감시의 시선을 회피하고자 오랜 기간 모범수로 지냈다. 교도소를 벗어난 그는 500m 떨어진 화훼 농가로 침입해 옷과 자전거를 훔쳐 구포사거리까지 간 뒤 택시를 타고 서울로 잠입했다. 이후 4만여 ㎞ 거리를 도주하면서 훔친 현금과 차로 생활했다. 체포 직전 경찰관들의 추격을 따돌린 것만 6회나 된다. 곳곳에서 출몰한 신창원 검거에 실패한 경찰서에서는 불명예 퇴직자들이 생겼다.
현상금이 1000만 원에서 당시 정부 수립 이후 사상 최고액인 5000만 원으로 올라가면서 신고가 많아졌다. 시민 신고로 검거된 신창원을 부주의로 놓친 경찰 측에서 현상금을 못 주겠다고 하자 소송이 벌어졌다. 신고자는 대법원 판결로 5000만 원을 다 받아냈다. 결국 1999년 7월 전남 순천에서 또 다른 시민 신고로 체포된 신창원 현상금은 두 번 지급된 셈이다. 체포 때 신창원은 “편해요, 그냥”이라는 말을 남겼다.
재수감된 신창원은 2004년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연달아 합격하며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학사학위를 준비 중이었던 2011년 8월 감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다 뇌손상을 입었다. 신창원이 지난 21일 또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소식이다.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희대의 탈옥수’가 새삼 떠오를 만하다.
신창원 자신은 교도소를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소년범들을 상담해 범죄를 막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난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부럽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사는….” 그의 일기장에 있는 글이다. 평범한 삶이 신창원의 가장 큰 꿈이었을 수도 있겠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