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장애인이 왜 생겼을까?

고대 서아시아 창조신화, 장애인 탄생 씁쓸한 기록

이면엔 정책적 배려 역설…韓 제도·현실 괴리 좁혀야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  |   입력 : 2023-05-24 19:20:06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선인들의 지혜를 전하는 전통 종교나 사상이 모두 인생은 고해일 뿐이라고 말한다. 순간순간 행복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생각지 못한 더 큰 파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바다에 나갈 때 신체나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겠는가? 그런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가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나라 청년들은 모두 죽을힘을 다해 입시와 취직을 위해 매진하며 살고 있다. 이 삼엄한 경쟁의 경기장 안에 장애인들을 배려한다고 설치한 특별한 전용로가 있다면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 만도 하다.

그럼 옛날 사람들은 장애인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은 신들이 인간과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럼 지혜롭고 전능한 신들이 인간을 만들었는데 이 세상에 왜 장애인들이 존재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이야기로 ‘엔키와 닌막’이라는 신화가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겼을 때 신들도 처음으로 태어났고, 나이 많고 높은 신들은 감독을 하고 젊고 지위가 낮은 신들은 수로를 파고 진흙을 퍼내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고된 노동을 견딜 수 없었던 신들은 지혜의 신이며 창조주인 엔키 신의 집을 찾아가서 불평을 했다. 궁전 깊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마지못해 일어난 엔키 신은 그 말을 듣고 인간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어머니 여신들이 점토를 잘 빚어서 인간 모습으로 만들면 그것이 생명을 얻어서 신들의 노동을 대신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물론 엔키 신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신들은 모두 이 일을 흡족하게 여겼고 함께 모여서 술잔을 나누고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다들 거나하게 취했을 때 그 자리에 참석했던 닌막 여신이 엔키 신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엔키 신이 정말 지혜의 신이라면 자기가 만드는 인간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 신은 내기를 시작했고, 닌막이 팔을 뻗고 접지 못하는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자 엔키는 왕의 신하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관리들이 항상 손을 뻗어 세금을 걷어가는 모습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닌막은 또 눈으로 빛을 볼 수 없는 인간을 만들었고, 엔키는 그가 궁전에서 악사로 일하게 하였다. 닌막이 발이 부러진 인간을 만들자 엔키는 은으로 장식품을 만드는 장인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닌막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를 만들자 엔키는 왕비의 궁전에서 일하게 해주었다. 닌막이 성기가 없는 인간을 만들자 엔키는 왕의 내시로 삼았다. 이번에는 엔키 차례가 되어 머리에 병이 나고 눈을 보지 못하고 목이 부러지고 숨도 잘 쉬지 못하고 갈비뼈가 어그러지고 심장에 병이 들고 장기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만들었다. 닌막 여신이 그 사람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포기하였고 엔키 신이 내기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이다.

‘엔키와 닌막’ 신화는 결국 신들이 술을 마시고 내기를 벌이다가 장애인을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현대 독자가 읽기에는 장애인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이들을 조롱하는 것 같아서 거북한 이야기로 들린다. 그런데 이 신화의 주제와 상관없이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닌막이 지어낸 장애인들이 자기 몫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왕궁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을 처음 만드는 자리인데 이미 왕궁이 있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이 신화의 저자는 왕이 제 역할을 하는 사회에서 왕궁이 장애인들에게 일할 자리를 마련하고 떳떳하게 자기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엔키 신이 직접 이런 제도를 창조했다고 말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운영해야 할 종교적인 의무가 있다고 간접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러서 우리는 문명과 과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다. 누구나 장애인들도 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에는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장애인차별금지법, 그리고 국가인권법을 통해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별 장애인 출현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전체 인구의 5.4%인데 OECD 평균 출현율은 24.1%라서 제도와 현실 사이의 온도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정말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보다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하려면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누릴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자립생활을 하며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개인의 인식 전환에서 시작하지만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정규반 신입생 52명 뿐인 부산미용고, 구두로 폐쇄 의사 밝혀
  2. 29년새 우울감 더 커졌다…울산·경남·부산 증가폭 톱 1~3
  3. 3부산 중구 ‘1부두 市 문화재 등록 반대’ 천명…세계유산 난항
  4. 4시민사회가 주도한 세계 첫 국가공원…스웨덴 자랑이 되다
  5. 5국제신문 사장에 강남훈 선임
  6. 6AG 축구 빼곤 한숨…프로스포츠 몸값 못하는 졸전 행진
  7. 7“을숙도·맥도 생태적·역사적 잠재력 충분…문화·예술 등과 연대 중요”
  8. 8용산 참모 30여 명 ‘총선 등판’ 전망…PK 이창진·정호윤 등 채비
  9. 9“용맹한 새는 발톱을 숨긴다…” 잠행 장제원의 의미심장한 글
  10. 10주차 들락날락 사고위험 노출…사유지 보호장치 강제 못해
  1. 1용산 참모 30여 명 ‘총선 등판’ 전망…PK 이창진·정호윤 등 채비
  2. 2“용맹한 새는 발톱을 숨긴다…” 잠행 장제원의 의미심장한 글
  3. 39일 파리 심포지엄…부산엑스포 득표전 마지막 승부처
  4. 4국정안정론 우세 속 ‘낙동강벨트’ 민주당 건재
  5. 5김진표 의장, 부산 세일즈 위해 해외로
  6. 6추석 화두 李 영장기각…與 “보수층 결집” 野 “총선 때 승산”
  7. 76일 이균용 임명안, 민주 ‘불가론’ 대세…연휴 뒤 첫 충돌 예고
  8. 8추석연휴 민생 챙긴 尹, 영수회담 제안에는 거리두기
  9. 9포털 여론조작 의혹에 대통령실 "타당성 있어" 與 "댓글에 국적 표기"
  10. 10강성조 "자치경찰교부세 도입 필요, 지방교육재정 재구조화 고민해야"
  1. 1BPA, 취약계층에 수산물 선물
  2. 2내년부터 주택 임대차 계약 신고 때 공인중개사 정보 기재 의무화
  3. 3스타벅스 거대용량 트렌타 사이즈 상시판매
  4. 4“서류심사 공정성에 문제”…산업은행, 신입행원 채용 일정 연기
  5. 5부산 아파트 매매지수 보합세 눈앞…3주 연속 -0.01%
  6. 6"데이터센터 설립 신청 68%, 부동산 이익 목적 '알박기'"
  7. 7'박카스 아버지' 동아쏘시오그룹 강신호 명예회장 별세
  8. 8'하도급 대금 연동제' 4일 시행…연말까지 계도기간 적용
  9. 9고물가에 등골 휜 추석…소외받는 사람 줄길
  10. 10"반 카르텔 외치더니…공기업 '낙하산' 산업부에서만 34명"
  1. 1정규반 신입생 52명 뿐인 부산미용고, 구두로 폐쇄 의사 밝혀
  2. 29년새 우울감 더 커졌다…울산·경남·부산 증가폭 톱 1~3
  3. 3부산 중구 ‘1부두 市 문화재 등록 반대’ 천명…세계유산 난항
  4. 4시민사회가 주도한 세계 첫 국가공원…스웨덴 자랑이 되다
  5. 5국제신문 사장에 강남훈 선임
  6. 6“을숙도·맥도 생태적·역사적 잠재력 충분…문화·예술 등과 연대 중요”
  7. 7주차 들락날락 사고위험 노출…사유지 보호장치 강제 못해
  8. 8“양산 웅상 현안 다양한 의견 모아 행정에 반영 보람”
  9. 9골프 전설들도 그린 위 엑스포 응원전(종합)
  10. 10오늘의 날씨- 2023년 10월 4일
  1. 1AG 축구 빼곤 한숨…프로스포츠 몸값 못하는 졸전 행진
  2. 2‘삐약이’서 에이스된 신유빈, 중국서 귀화한 전지희
  3. 3남자바둑 단체 우승…황금연휴 금빛낭보로 마무리
  4. 4우상혁 높이뛰기서 육상 첫 금 도약
  5. 5임성재·김시우 PGA 롱런 열었다
  6. 65년 만의 남북대결 팽팽한 균형
  7. 7롯데, 포기란 없다…삼성전 15안타 맹폭격
  8. 8[속보] 한국 바둑, 남자 단체전서 금메달
  9. 9'박세리 월드매치' 7일 부산서 개최… 스포츠 스타 대거 참석
  10. 10세리머니 하다 군 면제 놓친 롤러 대표 정철원 “너무 큰 실수”
우리은행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싱가포르다움’을 위한 그들의 선택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과학자들의 소통방식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기고 [전체보기]
대통령의 ‘서울·부산 2개 성장 축’ 실현되려면
안전한 세상에서 아동은 꿈을 펼칠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교권회복 시킨다더니…교육부, 교사 집단연가에 으름장
‘고삐 풀린’ 부산 분양가 괜찮나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꼰대세상
파격적 세대교체를 소망한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달’ 대신 ‘손가락’만 보세요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양말 뒤집어 신기
‘학생의 날’이 있다면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자연과 인간을 잇는 원초적 매개체
무대 밖으로 뛰쳐나온 예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PK는 목마르다
이젠 팬이 원하는 감독을 보고 싶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남성만 병역의무
3위가 목표인 대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명란과 옹기
시즈오카의 녹차 젤라또
사설 [전체보기]
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선택과 집중’ 열매를
추석 긴 연휴에도 여야 대치, 민생 협치로 풀어라
세상읽기 [전체보기]
명절 때 나눌 치매 예방 이야기
역사 전쟁과 자유론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실손의료보험 청구간소화와 의료민영화
간호법 제정안과 지역사회 보건의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해인의 서랍에서
친구에게 추천하는 두 권의 책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독일을 보면서 곱씹어보는 교훈
골짜기 세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불편한 제의
사적 공간의 미학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야만의 과학
밥의 길, 쌀의 미래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글로컬대학 30, 성공은 총장 리더십에 달렸다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잼버리 파행을 부산엑스포 전화위복으로!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되살리려면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화해의 와인
와인, 스토리텔링
특별기고 [전체보기]
수산업 몰락 재촉하는 후쿠시마 방사능 선동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가 비과학적인 이유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12음기법
바이로이트 음악축제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화가 장욱진이 온다
황창배의 ‘곡고댁(哭高宅)’
CEO 칼럼 [전체보기]
해양도시의 메카, 부산
세계박람회와 벡스코 제3전시장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