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돗토리 구라요시 걷기 행사 다녀왔다면서요? 어떠했나요?” 지인의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 꽤나 궁색하다. “글쎄,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가….”
지난 2∼4일 열린 2023 아시아 워킹 페스타(AWF) 참석 차 (사)걷고싶은부산의 일원으로 한국걷는길연합(한길연, KTA) 회원들과 함께 일본 돗토리(鳥取)현 구라요시(倉吉) 등지를 찾았다. 돗토리는 2015년 10월 아시아 걷기축제인 ‘아시아 트레일즈 콘퍼런스(ATC)’를 두 번째로 열었던 곳이다. 이듬해 10월에는 ATC의 글로벌 확장판인 ‘월드 트레일즈 콘퍼런스(WTC)’도 개최했다. 구라요시를 비롯한 돗토리현은 ‘워킹 리조트’로 유명하다. 돗토리현의 관광자원을 활용한 걷기 여행 코스도 속속 개발됐다. 길이 16㎞ 나 되는 일본 최대 규모 모래언덕, 재첩을 채취하는 구라요시 유리하마의 도고 호수와 주변의 온천들은 무척 유명하다. 이번 구라요시 아시아 워킹 페스타는 제22회 산인(SUN-IN) 미라이(未來) 워킹 행사를 겸한 자리. 걷기 코스는 3㎞, 5㎞, 10㎞, 20㎞, 35㎞ 등으로 다양하게 마련됐다.
그런데…. 문제는 걷기 행사 집결지가 구라요시 오가모강 인근 ‘돗토리 20세기 배(梨) 기념관’ 광장이라는 사실. 모든 코스가 이곳에서 출발해 되돌아오도록 했으니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길을 맛보는 게 어렵다. 기자는 이틀 내내 10㎞ 구간을 택해 걸었는데, 흙길을 밟는 게 귀했다. 아스팔트 포장 아니면 보도블록이 깔린 길이었다. 구라요시를 자주 찾은 한국의 일행에 물어보니 이전에는 코스가 이러질 않았다고 한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걷기 여행의 맛을 즐기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길과 사람, 문화(이야기)가 만나는 장면이 아쉬웠다. 환대는 좋지만, 축사 인사말과 같은 ‘의전’이 지나친 것도 문제였다. 온천협회 관계자와 학교법인 이사장 등이 걷기 행사의 단상에 왜 오르는가? 아무래도 협찬이나 후원과 관계있는 듯했다. 이건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현(縣)지사나 시장, 주최 측 대표자 정도면 충분하다. 그게 오히려 격에 어울린다. 팸플릿을 겸한 접이식 코스 안내도는 ‘해독’ 해야 할 판이다. 편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워킹 리조트’의 명성을 걷기 행사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기자가 이틀간 묵었던 유리하마 도고 호수 주변만 해도 걷기 코스가 많다. 하나같이 아기자기하다. ‘시토리신사(神社)를 만나는 길’, ‘배꽃 향이 감도는 길’, ‘바다 바람과 함께 걷는 항구길’ 등이 그것이다.
사실 돗토리현 구라요시 걷기 코스와 부산 갈맷길은 닮은 점이 있다. 대표적인 게 산과 강 바다 온천, 즉 사포지향이다. 그래서 부산의 갈맷길은? 구라요시의 2023 걷기 행사가 부산의 갈맷길에 묻는다. 너희는 잘하고 있느냐고….
먼저 갈맷길 안내 책자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런 식은 곤란하니, 구글에서 ‘갈맷길 안내책자’를 검색했다. 하나 뜬다. ‘갈맷길 여행자 수첩’이다. 여권형인데, 여권보다 조금 크고 길다. 총연장 278.8㎞의 갈맷길을 완보하려는 뚜벅이에 필수품이다. 하나 더 있다. ‘부산에 가면 걸어보길 YOLO 갈맷길 스토리북’이다. 줄이면 YOLO 갈맷길 북이다. 지난해 부산시 의뢰로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에서 만들었다. YOLO 갈맷길은 기존 갈맷길에서 10개 코스를 ‘엄선’ 한 것이다. 타깃은 부산을 찾는 걷기 여행객이다. 편집디자인이나 내용 모두 2030 세대 맞춤형이다. 하지만 YOLO 갈맷길 북은 구하기 어렵다. 책을 만든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사무실에서 ‘소장본’ 몇 부가 있을 뿐이다. 갈맷길 여행자 수첩에 YOLO 갈맷길 코스만 부록처럼 싣고 있다. 책자 원본 파일이 있으니 YOLO 갈맷길 북을 추가로 더 찍었으면 한다. 여기에 하나 더. 갈맷길 여행자 수첩이나 YOLO 갈맷길 북 모두 적어도 영문판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 외국 여행객을 배려하자는 취지다.
다음은 갈맷길의 코스별 이름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갈맷길 코스는 일련번호식으로 이름이 정해져 있다. 1코스 1구간(1-1, 임랑해수욕장∼칠암항∼일광해수욕장∼기장군청), 1코스 2구간(1-2, 기장군청∼월전마을∼대변항∼오랑대∼해동용궁사∼송정해수욕장) 등의 방식이다. 세부 구간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코스 이름만으로는 어느 구간을 걷는지 알기 어렵다. 이를 두고 남해바래길의 윤문기 팀장은 “걷기 여행객을 내쫓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아프지만, 옳은 지적이다. 총연장 231㎞의 남해바래길은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3개 코스로 구성됐다. 본선 코스의 이름을 보면 1코스 바래오시다길, 2코스 비자림해풍길, 3코스 동대만길, 6코스 죽방멸치길 등이다. 코스 이름만 들어도 어디를 거치는지 알 수 있다. 갈맷길도 이를 적극적으로 참조할 만하다.
오광수 편집국 부국장,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