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진 고정관념처럼 나쁜 게 없다. 거기 갇히면 현실 대응력이 무망해진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본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 그러니까 인구감소 추세에 대한 사회적 공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 자신을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재앙적 추세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이해도가 높다. 그런데 어떤 저명한 진보 지식인이 TV에 나와 명쾌하게 다른 의견을 설파한다. 언제까지 팽창적 산업시대 관념으로 살아갈 것인가.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줄어드는 인구를 오히려 달갑게 여기고 그 안에서 경제를 운용하고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길을 찾으면 된다. 대략 이런 요지의 담론.
그러고 보니 그런 발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고 또 생각해 보니 ‘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예시처럼 탈 발전지향적 미래상을 추구하는 게 좋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쌈박하고 신선한 목소리에 잠깐 매료됐지만 곧장 생각은 되돌아온다. 그래서 20~30년 후의 노령인구를 누가 먹여 살리느냐고요. 간신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한국의 경제규모를 AI 로봇의 생산력으로 대체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요. 그러니까 그 파격적인 생태주의적 진보관념은 허황된 것 아니냐고요. 곧장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현재의 인구규모를 유지라도 하기 위해 출산지원 확대, 국내이민 장려 등 기존 대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생각이 굳어 있는 쪽은 어디일까.
하나 더 예를 들면 중국 문제. 혹자는 말한다. 중국과의 교역 규모 축소와 무역역조는 양국 간의 국민갈등, 정치갈등 때문이 아니다. 중국의 생산 기술력이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에 이 축소와 손실은 당연히 올 게 왔다는 것. 우리가 나서서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마치 방탄소년단이 중국을 포기하고 나자 미국 유럽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루었듯이 탈중국과 더불어 미국과 유럽 동남아 남미 중동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발상의 전환이 그것이다. 그 역시 주장은 냉철하고 신선하다. 그런데 과연 현실성 있는 올바른 방향성일까. 지리적 이점이 십분 활용된 양국 동반성장의 30년 세월이 얼마나 눈부셨던가. 그런 노다지 없이도 퇴보 없는 미래상이 가능한 것인지. 나는 정파성에 휘둘리는 친중 반중론을 떠나서 중국 없는 한국의 경제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심히 궁금하다.
이 같은 쟁론거리는 너무나 많은데 저출생 문제건 탈중국론이건 지금 특정한 의견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굳어진 고정관념을 벗어나 당대와 미래전망에 부합하는 방향성이 궁금한 것이다. 일단 공론장에서 20~30대의 주장이 들리지 않는다. 탈냉전이건 복지확장이건 1980년대 이래 근 30년 간은 20대 목소리가 시대를 이끌었건만 지금 국가 중심의제에서 젊은 층은 배제되어 있다. 국정책임이 있는 대통령에게는 다양한 가능성과 문제점을 고려한 체계성이나 사회를 변화시킬 혁신성이 보이지 않는다. 사적 경험에 의거한 돌발적 발언이나 개인적 경로로 취득한 반짝 아이디어를 불쑥 내밀어 온통 난리가 나는 일이 반복된다. 경험의 부재를 면책사유로 들지만 지나간 군인 대통령들을 포함해 대부분 경험 부족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전임자들은 유능한 보좌진들로부터 열심히 학습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같은 학습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무성하고 오직 의존하는 것은 우익 유튜버들이라는데 헛소문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직 한국은 과거 경험을 토대로 나아가기에는, 그래서 기득권적 관점에 가산점을 두기에는 현대 공화정의 연륜이 너무나 짧은 신생국에 불과하다. 교육제도건 부동산 정책이건 노동정책이건 대수술을 감행해 혁신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그런 변화를 주도할 사회동력이 점차 고갈되어 가고 장노년층의 성공담론에 기초한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한국의 미래상을 어둡게 전망한다. 그렇게 보는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논리적 근거는 차고 넘친다. 그런 점에서 대안세력인 민주당이 더 크게 바뀌어야 한다. 집권 시 적폐청산론도 네거티브 전략이었고 야당일 때는 비판 여론에 힘입은 투쟁론이 대세를 이룬다. 국힘 정권 하에서 부정적 미래전망이 팽배해 있다면 민주당은 비판적 투쟁 이상으로 밝고 희망적인 대안적 의제들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강대국 외교, 대북관계, 경제 재도약 프로그램 설정이 핵심으로 보이는데 그 첫 단추는 파격적인 세대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힘 당대표에 30대 청년이 올랐던 것 이상의 혁신성이 필요하다.
당연히 세대교체론에 대한 반론이 무성할 것이다. 교체는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윗세대를 향해 스스로 치고 올라와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 온당한 말이기는 하나 인위적으로라도 야당 민주당의 의석 절반 이상이 30~40대로 채워질 때 한국이 필요로 하는 변화의 갈망을 선도하리라 믿는다.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1980년대의 투사들. 고생도 많았지만 누리기도 많이 했다. 총선을 앞두고 그들이 대거 자발적으로 퇴장하는 아름다운 정치를 보고 싶다.